장강(長江)의 뒷물결이 앞물결을 밀어낸다 했다.

모든 것에는 각자의 역할이 있고, 시대가 변함에 따라 그 역할이 끝나면
다음 세대에 자신이 하던 역할을 건네고 세월 속으로 묻히는 것이 세상의 이치요, 순리다.

문명은 그렇게 발달되어 왔고, 역사는 그렇게 순환되어 간다.  


 

나룻배가 하던 일을 이제는 육중한 근육을 자랑하는 철교가 그 일을 대신 한다.
그러면서 이 골조물은 우리의 기억 속에 담겨져 있던 많은 아름다운 정경을 앗아가 버렸다.

하지만, 그 누구도 이놈을 탓하진 않는다.
이것도 하나의 흐름이고, 언젠가는 자신이 빼앗은 것 만큼 그 무엇에 의해 얘도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강을 잇는 다리가 들어서면서 삼강주막은 그 설자리를 잃고 말았다.
한때는 강을 마주한 많은 사람들을 이어주고, 수많은 보부상들의 일시적인 쉼터였을텐대...
이곳의 탁주를 맛보고 싶어 잠시라도 타임머신을 타고 그 속으로 돌아가 볼 수는 없는 것일까.
주막의 지붕위에 드리운 고목의 무성한 가지가 세월의 무게감을 더해준다.
   


 

주막과 더불어 얘도 오갈데가 없어졌다.
물이 있어야 존재의 의미를 알 수 있었던 이 친구는 이제 빗물만을 품고 있는 딱한 처지가 되어버렸다.
어쩌면 얘는 홍수로 물이 범람하기를 기다릴지도 모른다.
그래야 비로소 자신을 찾을 수 있을테니...




이제는 빛바랜 토벽과 흩틀어진 문풍지의 흔적 속에서,
소반과 술상을 들고 부지런히 들락거리는 주모의 모습을 그린다는게 애초부터 욕심이었을까.




지붕을 받치고 있는 나무들의  모습에서 퇴역한 노병의 깊은 주름살과 생채기를 보는듯 하다.
문옆에 매어달은 기름통과 호스에서,  변하는 시대에 끝까지 적응하려는 안간힘을 보는 것 같아
오히려  안스러움이 느껴진다.




최익현이 죽기를 각오하고 거부했음에도 단발령은 거두어지지 않았다.  그게 시대의 조류다.
나무가 익숙하던 이 아궁이  역시 새로운 것을 맞아야 한다. 
나무도 없지만, 나무를 할 젊은이도 없다. 
술익는 주막의 아궁이에 이미 볏짚은 사라진지 오래다.

주막의 외모와 내부에 비해 가지런히 쌓아놓은 연탄은 꽤 단정하다.
누군가가 최근까지 주막을 지키려했던 흔적인거 같아 더욱 마음이 편치 못하다.
이 연탄을 가져다놓은 사람은 지금 어디 있는 것일까...


 

렌즈는 부엌에서 밖을 뿌옇게 보여주었다.
이 주막을 지키던 사람들의 눈에도 미래는 그렇게 보였을 것이다.
분명히 미래는 밝을텐데, 그들의 마음으로는 그 밝음이 선명하게 보여지지 않았나 보다. 
그래서 이곳을 떠난 것이 아닐런지...




주막과 함께 세월을 지켜온 우람한 정자나무.
시골의 마을 어귀에는 어김없이 커다란 정자나무가 있다. 
이 정자나무도 이제는 더 이상 버틸 힘이 없나보다.

이 나무를 힘들게 하는 것이 세월의 힘인지, 변화의 힘인지는 모르겠지만,
변화의 산물인 철골이 버팀목이 되어주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이렇듯 사실은
장강의 뒷물결이 앞물결을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선대(先代)를 후대(後代)가 지켜주는 것이 올바른 역사의 순환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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