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GV.
과연 빠르다.  시속 250 Km라는데, 귀가 멍멍하다. 
시간이 지나 어느 정도 적응을 하기 전까지 고막이 압력을 받는다.
일본에서 타본 센깐센과 정확한 수치 비교는 어렵지만, 느낌상으로는 더 빠른 거 같다.

앞에 앉은 뚱뚱한 할아버지와 얘기를 나누는데, 여러가지 이야기를 한다.
깐느를 가본 적이 있다고 하니, 영화제에 대한 이야기와 외국의 영화배우에 대해 줄줄이 읊어대는데,
여지껏 자기 영어를 못 알아듣는다고 불만이 많던 초이가 신이 났다.
얼굴에 화색이 돌며 나를 바라보는 눈길이 득의만만하다.  그래.. 넌 임자 만나 좋겠다...
프랑스 옛 여배우 이름을 서너명 대니까 나보고 프랑스에서 살으란다.
여배우 몇 명 소개시켜 주면 못할 것도 없다고 하니, 자기도 급하다나...  할배가 무슨...

코리아에서 왔다니까, 이번엔 월드컵에 대한 얘기를 비롯해 축구 얘기로 돌아간다.  
이 할아버지 아시는 것도 많네...



아시는 게 많은 할아버지와 영어 잘 하는 초이가 제대로 맞붙으니,
아는 건 많지만 영어가 짧은 내가 할 일은 앞으로의 일정을 점검하는 일 밖에 없다.
 

창 밖으로 한 없이 이어지는 평야.  곡물이 참 많이도 나오겠다.
보르도 지방 근처부터는 포도밭이 펼쳐진다. 
포도주로 인해 귀에 익은 보르도.  여기가 그 보르도구나... 

파리 몽빠르나스역에서 출발한 떼제베는 그렇게 6시간 정도를 달려 스페인 국경을 지나 Irun 에 도착한다.
이제 여기서부터 포르투갈 Lisboa S.A 역 까지 13시간 45분간의 내 생애 최장시간의 기차여행이 시작된다.
그러니까 몽빠르나스역 부터 포함하면 약 20시간 동안 기차만 타는 셈이다.


처음 타보는 침대열차 쿠셋. 

처음 쿠셋을 접한 느낌은 정말 [웃긴다]는 거였다.
사다리를 타고 상단에 올라가 시트를 깔다보니 왜그리 웃음이 나오는지, 시트를 깔다 말고 엎드려 한참을 웃었다. 
사실 별로 웃을 일도 아닌데, 왜 그렇게 웃음이 나왔는지 모르겠다.



우리가 탑승했던 열차에는 이미 다른 가족이 누워 있어, 사진을 찍는 게 예의가 아닌 거 같아 쿠세 내부사진을 찍지 못했다.
그래서, 인터넷에서 쿠셋 내부를 가장 잘 표현한 사진을 빌려왔다.
[사진 원본은
 http://cafe.naver.com/cooset/33
써니 (siwoo51)님이 게재하신 것임]


쿠셋은 한칸에 좌우로 침대가 있다.
언뜻 보면 좌우 2단씩 침대가 있는거 같은데, 위 사진에서와 같이 아래 등받이 처럼 보이는 것을 들어올려
침대의 벨트를 천정 고리에 연결하여 3단으로 사용한다.  (사진에 설명을 참 잘 해주셨다)
중간 침대를 몸무게가 나가는 사람이 사용할 경우, 과연 벨트와 고리가 지탱을 할 수 있을까 매우 우려되지만,
어쨌든 좌우 세 개씩 6인용인 것이다.

쿠셋의 티켓에는 룸 호수만 지정되어 있을 뿐, 침대에 대한 좌석 지정은 없기 때문에,
먼저 선점하는 사람이 침대의 주인이 되는데,  개인적으로 맨 위가 제일 좋은 거 같다.



요렇게 천정에 수납받침대가 있어 배낭이나 소지품을 올려놓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도 도난의 가능성은 늘 있으니,  카메라 등 소지품이나 짐 관리를 잘 해야 하는데,
아무래도 하단보다야 상단이 손을 탈 확률이 덜하지 않겠는가.


대충 짐을 정리하고 자리를 잡고 앉으니, 아래 층에 있는 꼬마 둘이 우리를 빤히 올려다 본다.
엄마와 아이 둘이 코앞에 가까이 있는 우리를 바라보며 신기한 듯 웃는데, 사실 신기한 건 우리도 마찬가질세 그려...
스페인인지 포르투갈인지 알아듣지 못하는 말로 얘기를 하는 아이들에게 육포를 건네주며 초이가 말을 건넨다.

'What's your name?'
- @>@...???  

아이들이 비식비식 웃기만 할 뿐 대답을 못한다.   당연하지... 애들이 영어를 알간...  
초이.. 니가 낮에 할배와 말좀 통하더니, 바로 up됐구나...  기고만장하게시리...
' 야 ~~   얘들이 영어를 알겠냐...  잘 봐...'

초이의 어깨를 치며, '초이..' 라고 몇 번 반복하고는 내 가슴을 두드리며 '리..' 라고 반복한 후,
꼬마 한 명을 지정하니 '니노 도민치..' 그런다.  
이번엔 내가 초이에게 득의만만한 미소를 보낸다.

아이들과 제대로 통하지도 않는 손짓 발짓을 하고 있는데,  아시안이 들어온다.
파키스탄이라는데, 순진한 표정으로 우리에게 땅콩을 건넨다.  
그런데, 동남아 사람들은 여기서도 왠지 불쌍해 보인다.  왜 그럴까...


그건 그렇고,  처음 쿠셋칸에 들어왔을 때 중간 침대가 벽에 접혀있어 2단 침대인 줄 알고,
상단에 준비된 담뇨와 베개를 하단에 하나 씩 내려주니 2개 씩이 남아 그냥 사용을 했는데,
나중에 가운데 침대를 사용한 사람은 뭘 덮고 잤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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