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내 몸에 작은 전쟁이 일어났다.
손이 뇌에 반기를 든 것이다.
뇌로서는 전혀 상상도 못했던 일이었기에 그 충격은 클 수밖에 없었다.
여지껏 지내오며 모든 신체가 자신의 뜻을 거역한 적은 없었다.

물론 오장육부 같은 불수의근의 경우 반드시 자신의 뜻대로 되는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자신과 비교적 잘 화합하며 지내왔고,
특히 수의근인 경우는 자신의 뜻이 곧 절대 법이었다.
근데 골프를 시작하면서 각 신체가 각각 조금씩 자신의 뜻과는 다른
행동들을 보이는게 느껴진다. 그중에서도 요즘 나타나는
손의 행동은 조금씩 그 정도가 좀 지나친 것 같다.

: 야! 너 요새 왜그래?
: 뭐가?

: 뭐가 뭐야... 왜 시키는대로 안하고 니 멋대로야?
: 내가 뭘 어쨌길래?

: 지금 몰라서 묻는거야? 왜 자꾸 볼을 왼쪽으로 보내? 
       그린이 어디고 핀이 어디 꽂혔는지 눈이 다 보여주잖아...
       근데 왜그래?  핀까진 몰라도 그린엔 올려줘야지...
       그리고 그 넓은 페어웨이 놔두고 왜 자꾸 언덕으로 보내?
: 아~~ 나도 몰라...

: 뭘 몰라 모르긴...     손목이 먼저 돌아간다고 그렇게 얘길해주는데도 왜 고칠 생각을 안하는거야?
: ...

: 왼손등을 쭉 뻗으랬잖아.    근데 왜 그렇게 손목을 빨리 돌려접느냐고?
: 그럼 왜 나만 갖고 그래?   머리도 빨리 들잖아...   어깨 쟤도 문제고...

: 그래도 직접 공을 때리는건 너잖아.    그리고 네가 어깨를 리드해 줘야지.
: 언젠 또 어깨가 밀어줄 때 까지 먼저 들어올리지말고 기다리라메...?
       그리고 또 언제 연습장이나 데려가보고 하는 소리야?

: 아이.. 씨... 좌우간 너땜에 발이 얼마나 고생하냐?
       오늘도 이 무더운 날에 언덕을 몇번이나 오르내렸어?

: 야... 내 정말 말 안하고 가만있을라 그랬는데,  진짜 나도 힘들어 죽겠다.
       평일엔 입이 술먹는 바람에 밤마다 갈지자...    그래도 그땐 왔다갔다 폭이나 좁지,
       주말에 좀 쉴라카면 이번엔 페어웨이에서 또 갈지자.    이건 이동 폭이 또 좀 넓냐?
       다른 친구들은 똑바로 다니는데, 맨날 나만 혼자 왔다갔다야.
       입은 떠들고 먹기라도 하고, 넌 가끔 버디라도 하면 하이파이브라도 하지... 
       정말 난 낙이 없다.
: 그러길래 누가 너보고 밑에 달리래. 니 팔자인걸 어떻하냐...

: 좌우간 손!!  너 잘해서 이글패나 홀인원패도 한번 받아야 할거 아니야.
       그거하면 결국 받는 것도 니가 받지, 그걸 발이 받냐?  그렇다고 머리가 받겠냐?
       전에 싱글했을 때도 패 니가 받았잖아...
: 어이구~~ 생색은... 야... 그때도 결국 먹는건 입이 다먹고,  난 카드밖에 더 냈어?

: 야~ 씨... 그래 따지면 난 뭐가 득되는게 있는데...???
: 아~ 넌 기분이라도 좋지... 넌 기분만 좋으면 다잖아.

: 야 이친구야... 난 뭐 먹기만 하는줄 알아... 
      네~다섯시간동안 나이스 샷, 나이스 어프로치, 나이스 퍼팅, 나이스 파...
      도대체 나이스를 몇번이나 외치는줄 아냐?  입술이 다 부르튼다.
: 그래그래... 됐다 됐어.  다들 고생하네.
      나야 뭐 특별히 하는 일이 없어서 말할 처지도 못되지만... 
      근데... 손!  나도 굿샷, 나이스 퍼팅, 나이스 버디... 뭐 이런 소리 한번 들어보자. 
      그런소리 들어본지 꽤 오래네... 부탁좀 하자.

: 에이~씨발... 전부 내 책임이래...

심장 : 야~ 이제 니들 그만해라.   니들 그럴 때마다 내가 아주 피가 마른다.
허파 : 어이구~~ 그래도 볼 좀 맞는다고 내가 쓸데없는 바람이라도 나봐라.
          남들이 보면 그것도 꼴불견이다.

: 하~~~ 좌우간 손 쟤땜에 내 세포가 엄청나게 죽는거 같아...


손의 반란은 언제나 끝날까...


* 오늘의 Tip :

살다보면 모든게 다 내뜻대로 될 수만은 없음을 안다.
그걸 조율할 수 있는건 결국 [마음]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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