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전
보고 듣고 느끼고/영화겉핥기 2009. 3. 2. 03:33 |전 세계 주식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투자의 귀재라는 워렌버핏마저 작년 하반기에만 수십억달러의 손실을 봤다고하니
소위 개미라 일컬어지는 일반 투자자들의 아픔이 어느정도인지는 생각하기도 무서울 정도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런 힘든 시기일수록 한방을 꿈꾸는 경향이 있다.
살아오며 손실이 많을수록, 그리고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회복하기 힘들수록
더 그런 환상을 갈망하게 되는게 속인들이 버릴 수 없는 속성인가보다.
영화 [작전]은 그런 드라마틱한 행운을 한번쯤 생각해보는 사람,
그리고 그런 엄청난 함정에 한번쯤 빠져본 사람들이 보게되는 영화가 아닌가 싶다.
IT벤쳐에 투자하라는 선배에게 속아 돈을 날리고 5년간 절치부심하여 주식에 일가견이 있는 개미가 된 박용하.
우연히 작전주에 투자를 하여 고수익을 남기게 되나, 그로 인해 작전에 실패한 작전세력의 협박에 의해
엄청난 규모의 새로운 작전에 가담하게 된다.
창투사 대표, 증권사 차장, 큰손들의 투자상담을 하는 PB, 그리고 증권방송의 투자분석가와 일명 왕개미까지,
주식에 어느정도 관심을 가져본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역할들이 모두 등장한다.
심지어 금융감독원까지.
어설픈 아마튜어지만, 내가 들은 역시 어설픈 풍월에 의하면 주식시장에서 작전이 이루어지려면
몇가지 구성요소가 필요하다고 한다.
일반인이 제대로 모르는 저가치 상장사와 그 상장사의 대주주, 주가상승의 호재로 활용될 적당한 루머소재,
그리고 작전에 투입될 자금과 작전을 수행할 작전세력.
이중 가장 핵심적인 것이 소위 조각이라고 일컬어지는 작전세력의 구성.
작전이라는게 결국은 보안과 타이밍의 싸움인만큼 서로간의 신뢰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서로 확실하게 믿을 수 있는 사람들로 조각을 하는게 제일의 요건이다.
하지만, 작전의 특성상 매도 타이밍에 따라 수익율이 크게 달라질 수 밖에 없고
저마다 대박을 노리는 자본 투자자들의 구성요소가 복잡하기 때문에
서로간의 이해관계와 고수익의 유혹 앞에 신뢰가 끝까지 지켜질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가 없다.
결국 누군가 더 큰 욕심을 내거나, 혹은 먼저 불안감을 참지못하는 사람에 의해 균열이 생기게 된다.
영화 [작전]은 작전세력간의 이렇게 각기 다른 속셈과 욕망에 의한 갈등과 배신의 전개과정을
지루하지않고 흥미진진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 영화를 본, 주식에 대해 많이 안다는 어떤 사람은,
이 영화는 주식에 있어서의 작전이라는 개념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만든 영화라고 했단다.
아마 그 사람이 알고있는 작전주식과 많이 다른 모양인데,
진짜 다른건지 그렇다면 어떻게 다른건지 나로선 알길이 없다.
하지만, 영화내용이 현실과 다르건 같건, 우리같은 일반 개미들에게는 이나마도 좋은 교과서가 되는거 같다.
작전이라는게 일반투자자가 생각하고 있는 것 이상으로 거대한 자본과 커다란 음모에 의해 움직이고 있고,
결국 그들이 만든 시나리오에 의해 일반인들의 출혈로 이어진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면 말이다.
그리고 몇개라도 주식용어를 배우고, 조금이나마 그 세계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기에.
최근의 영화를 보면 종전과 다른 신선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
스타의 이름에만 의존하지않고, 인지도는 다소 떨어지더라도 연기력이 받쳐주는 캐스팅.
[작전]의 캐스팅도 그렇다.
그나마 이름이 익숙한 박용하나 김민정만 하더라도 장동건이나 엄정화와 같은 대형스타는 아니다.
박희순도 매니아들에게는 실력을 인정받는 연기자이지만 일반인들에는 이름만으로는 낯설다.
증권사 차장 역으로 나오는 김무열은 나도 처음 들어보지만 이미 뮤지컬무대의 스타란다.
하지만, 그들이 각기 다른 개성으로 배역 속에 녹아들어 엮어내는 작전세력의 분위기는
관객의 시간과 공간을 압도하기에 충분했다.
영화제작 뒷얘기도 재밌다.
시나리오 작업이 시작되던 2007년 2000포인트를 넘던 주가가 촬영이 한창이던 2008년에 1000포인트 밑으로 급락했는데,
이때 곳곳에서 들려온 주식투자자들의 탄식과 언론의 암울한 뉴스가 영화의 리얼리티를 더 살릴 수 있었다고 한다.
또한, 잘나가는 PB 와 백수개미의 현실사회속 신분차를 말해주는 듯, 극중 박용하의 전체 의상비용이 김민정의 의상
한벌 값도 안됐다고.
- 고만고만한 대학 나와서 고만고만한 회사나 다니고... 평생 열심히 일해서 기껏 이 조그만 아파트...
남들은 주식이다 부동산이다 저만치 달려가는데 우린 이게 뭐냐고?
- 아무리 발악을 해도 안되는 놈은 안되는게 세상이야.
이 대사에는 이 시대 이 사회 속 서민들이 한숨을 내쉬는 이유가 무엇인지 담겨있다.
그래서 사람들이 더 대박을 꿈꾸고, 그래서 더 냉정하게 정신차리자고 이 영화를 만들었는지 모른다.
영화가 막 시작되기 전, 내 앞자리에 머리가 희끗희끗한 한 중년이 혼자 자리를 잡았다.
그 남자는 영화가 다 끝나고 사람들이 자리를 일어서는데도 계속속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출입구를 나가며 다시 돌아본 그때까지 내 눈에 들어온, 한손으로 턱을 괴고 자리를 지키던 그 남자.
아직껏 잔상이 남아있는 그 중년남자에게 [작전]이란 무엇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