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사람의 카메라
나의 폴더/나, 그리고, 가족 2009. 12. 11. 18:37 |카메라를 들고 다니면서 가끔 집사람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 때가 있었다.
내가 피사체에 집중하는 그 시간동안 집사람 혼자 겉도는 듯한 모습을 볼 때다.
그러다 가끔 집사람이
"여보.. 여기서 저기를 이렇게 한번 찍어봐.." 혹은,
"여보.. 저 모습도 재밌지않아요..??" 하며, 내가 미처 생각치 못한 설정이나 구도를 잡아주기도 한다.
한번은 집사람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당신도 사진에 관심을 가져보지.. 어떤 때 보면 당신도 피사체를 보는 감각이 꽤 있는거 같은데.."
그때 돌아온 집사람의 대답은 나를 상당히 미안케 하기에 충분했다.
"당신은... 내가 옛날부터 하고 싶었던게 뭔지 몰라..."
홀어머니와 함께 지내며 학자금대출로 대학을 마친 후 집사람이 교직을 택한건
교직에 대한 애착이라기보다 오로지 경제적 자립을 위해서였다.
결혼 후에도 집사람은 꼭 필요한 일상 필수품 외에 자기만의 [것]이 없다.
집에 자동차도 하나만 있으면 됐고, 그것은 늘 내 차지였다.
같이 맞벌이를 하면서도 나는 자가용, 집사람은 대중교통을 이용했다.
집에 카메라가 있었지만 그것도 의례 내가 사용하는 내 카메라였다.
그 외에도 [자기 것]을 생각치않는 사람이 집사람이다.
그런데, 집사람은
가지고싶다는 생각이 없었을 뿐,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없었던건 아니었다.
꼭 필요치 않으면, 그리고 내 손에 없더라도 식구 누군가에게 있으면 됐지,
자기 손에도 있어야 한다는건 낭비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그렇게, 내게도 있고 아이들에게도 있는게 집사람에게만 없는게 많다.
카메라도 그렇다.
나도, 재원이도, 그리고, 지연이에게도 있지만, 집사람에게는 없다.
"당신은... 내가 옛날부터 하고 싶었던게 뭔지 몰라..."
이 말은 무심했던 내 정수리에 대침으로 꽂혔다.
가족 구성원으로서 당당하게 주장할 수 있는 자기 몫의 일정부분을
그동안 말없이 희생하고 있었다는걸 미처 가늠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집사람의 카메라를 장만해주기로 마음먹었다.
기왕이면 집사람과 상의하여 집사람이 선호하는 카메라를 구입하는게 좋겠지만,
협의하는 순간 추진이 안된다. 당연히 반대를 할 것이기 때문에...
때문에 혼자 질러야 한다.
그래서 11월말에 내지른 요놈들.
니콘 D90 과 시그마 17-70mm.
기종 선정 기준은 이렇다.
- 내 카메라가 니콘이니, 렌즈호환성을 감안하여 브랜드는 니콘으로.
- 집사람의 사용 편의성을 감안하여 무게와 부피를 고려해야 한다. (너무 크거나 무겁지 않은 것으로)
- 뭐든지 한번 사면 좀처럼 바꾸지않는 집사람의 성격을 감안할 때,
한동안 모델 업그레이드를 하지않아도 될 정도의 일정수준 이상 스펙을 갖춘 모델은 돼야겠다.
렌즈도 마찬가지다.
집사람 성격상 렌즈 몇개 들고다니며 갈아끼우는 스타일은 아니니 줌렌즈가 답인데,
렌즈 역시 너무 무거우면 휴대가 불편하니 고배율 줌은 곤란할거 같다.
그리고 어차피 내게 28-300mm 렌즈가 있으니 굳이 망원영역이 중복될 필요도 없고.
크롭바디임을 감안하면 적절한 줌에 오히려 광각을 보강하는게 정답이라고 판단했다.
1주일여를 SLR클럽 장터에 매복한 덕분에
금년 8월 구매하여 310컷 찍은, 정품등록도 안한 니콘 D90 완전 신동을 84만원에,
금년 4월 구매한 시그마 17-70mm 렌즈는 32만원에 구입했으니, 아주 만족스럽다.
일단 집사람도 모델에 어느정도 만족스러워 하고, 지연이가 더 탐을 낸다.
요즘 이 카메라의 집중세례를 받는건 당연 꼬맹이지만,
앞으로 집사람과 함께 다닐 나들이가 기대된다.
이제 내가 사진을 찍는 동안 혼자 서성이는 집사람의 모습을 보지않아도 되는게 마음 편하다.
그리고, 같은 곳에서 담아온 각자의 사진을 보는 것도 흥미롭겠지...
집사람과 함께 소망하는건, 언젠가 재원이와 지연이까지 포함하여 [가족사진전]을 갖는 것.
좋아하는 피사체나 보는 각도 등 각자의 취향이 다 다르기 때문에 더 재밌을거 같다.
언제일지 모르는 그 날을 생각하는 것 만으로도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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