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연말 광호가 두번 까사미오를 찾았다.
혼자 한번 오더니, 2주후 가족들과 다시 까사미오를 찾은 것이다.

워낙 서울을 자주 오지도 않지만, 까사미오 오픈 후 한번도 오지않던 친구가 갑자기 두번을 거푸 찾은걸보니
친구가 많이 그리웠던 모양인데, 그러고보니 2005년 4월 병원 개원시 춘천을 찾아가고는 나도 그 이후 가본 적이 없다.
그러던 차에 작년 딸아이 결혼식에 광호의 축의금을 전달받은 형수가 광호에게 한번 가자는 얘기를 했었는데,
그 제안을 지난 주말 실천에 옮겼다.


친구들과 함께 움직일 때 누군가의 입에서든 의례 나오는 얘기.  "누구 차로 가냐?"
기름값 제일 싼걸로 가자는데 의견을 모아 형수가 회사차 프라이드를 끌고 나왔다.

- 차가 좀 좁아 불편하겠지만...
> 좁긴 뭐가 좁냐.  오손도손 얘기하기 딱이구만.  주차하기도 편할테고...
  
(근데 사실 볼보도 타보고싶었고, 제너시스도 타보고싶긴 했다.  녀석들... 좋은 차는 꼬불쳐두고...)
 
이런 대화를 시작으로 토요일 오후 세시에 만난 오십중반 친구들의 추억만들기가 시작됐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춘천의 약속한 장소에 도착하니 4시 45분.
광호와 반갑게 만나 평소 즐겨 찾는다는 퓨전일식집 [누보]에 들어선게 다섯시 조금 넘어였다.

자리를 잡으며 내가 먼저 읊었다.

나 : 내가 광호 옆에 앉을래.
광호 : 왜?
나 : 내가 너 좋아하잖냐..
광호 : 그게 아니고 너 담배때문에 그러지??
나 : 알긴 아네...  지난번에 네 앞에서 두시간반동안 담배연기 받아먹다가 목이 잠겨 반벙어리되는줄 알았다.

그렇게 잡은 자리.




앉은 자리 왼쪽과 오른 쪽은 성향이 다르다.
광호와 나는 동창들을 만나기는 하지만, 대개 단체모임 외에 개별적으로 만나는 친구는 극히 제한되어 있다.
반면에 형수와 굉복이는 마당발이다. 이쪽저쪽 모임 뿐 아니라 개별적으로 만나는 친구들의 폭이 매우 넓다.

나를 중심으로 시계방향으로,

박굉복..  이 친구의 머리 속 구조는 대체 어떻게 되어있는지 정말 궁금하다.
동기회장을 아마 10년이상 맡고있는거 같은데, 회비 걷는데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졸업30주년을 기념하여 이 친구가 동기들로부터 모아 기증한 1억원은 역대 단일기수 최고액이라고 할 정도로
동창회의 뉴스거리였다.  오죽하면 내가 붙인 별명이 [빨대]인데, 그럼에도 누구하나 이 친구를 멀리하지 않는다.
그리고 누구나 이 친구의 말이라면 복종(?)을 한다.  그렇다고 어디가서 나서거나 생색을 내는 스타일도 아니다.
수백명 동기들의 수많은 경조사를 다 챙기고, 어지간한 동창들의 와이프와 아이들 이름까지 줄줄 외우는
그 열정과 관심이 개성강한 친구들을 다 빨아들이는 흡인력의 원천이 아닌가 싶다. 

김형수..  인상만큼이나 누구에게도 거부감을 주지않는게 이 친구의 강점.
수년만에 처음만난 친구에게도 바로 얼마전 만났던 것처럼 친근하고 스스럼없이 대해주는 인간미 넘치는 친구.
자기가 마음에 드는 친구는 다른 자리에서도 P.R(?)을 해가며 여러 곳에 끼워주고 싶어하면서도,
실망스러운 친구에 대해서는 별로 입을 열지않는 이 친구는, 방금 헤어지고도 택시안에서
"친구야.. 사랑한다." 라는 문자를 보낼 정도로 휴머니즘 가득한 로맨티스트다.
하지만, 자신의 고민은 늘 혼자 새기는 이 친구의 마음 한켠에는 가끔 언뜻언뜻 햄릿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기도 한다. 

이광호..  옆에 있으면 떡 한쪽이라도 생기는, 큰 코 만큼이나 모든게 여유로워보이는 친구.
자기보다 부족한 친구에게 모든걸 다 퍼주면서도 스스로를 뻐기거나 결코 상대를 낮춰보지 않는 것은,
그가 물질로만 넉넉한게 아니라 마음이 더 넉넉하기 때문일 것이다.
언뜻 까칠한듯 하면서도 마음이 모질지못해 손해보는 경우가 더 많은 이 친구는
관심분야만큼은 늘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것이 취미이기도 한데, 이런 Newie 마니아가
그래도 40년 넘은 묵은 친구를 바꾸지않고 놔두는걸 보면 참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자리에 앉으며 담배가지고 한마디했더니, 보이지않는 곳에 내려놓고 피워주는 저 센스.^^


광호가 와인 좋은 걸로 몇병 가져오라고 했지만,
식당에 너무 많이 들고가는건 예의가 아닌거 같아 두병을 가지고 갔다.
와인 세병을 비우고 광호가 잡아준 숙소에 차를 주차시키고 슬도 깰겸 당구장으로 직행.
모두 오랜만에 큐를 잡고 두시간여 당구를 즐긴 후 포차로.
그곳에서 소라를 안주삼아 소주 2병을 비우고 어디를 갈까 한참을 망설였다.

- 야...  오늘이야말로 늦게 들어가는거 걱정 안해도 되잖아...
> 그러네...  오늘은 정말 들어가는거 신경 안써도 되는 날이네..
- 그러니까 오늘같은 날 우리가 뭐좀 재밌는게 없을까??

그래봐야 대한민국 술문화가 다 거기서 거기지, 뭐가 색다른게 있겠나...
결국 찾은 곳이 노래주점.  그것도 길거리를 헤매다 추위에 쫒겨 골목에 있는 작은 집을 찾았는데,
간판의 이름같이 [매혹]적인 곳은 아니었다.  차라리 도전정신을 갖고 그 옆의 [벤쳐]로 갈걸 그랬나...
별로 맘에 들지않으면서도 결코 누구하나 나가자는 말도 하지못하는 50중반의 소심남들이 무엇을 하겠나.

결국 맥주에 노래만 부르다 숙소로 돌아왔다.  
요렇게...




맥주 여섯병을 사들고 모텔로 돌어온 소심남들.

잠자리를 아주 건전하게 확보했을을 인정함!!!

굉복이가 한 소리한다.

- 내가 오십이 넘어 대단한 이상범이하고 같이 잠을 자게 될줄이야...
> 그러게..  야~~ 우리가 오십넘어 이렇게 한방에서 잘거라고 생각을 했냐...  더구나 넷이서...

이렇게 새벽 네시쯤 잠이 들었다.
광호와 형수는 침대에서, 굉복이와 나는 바닥에서.  무슨 특실이 이래...

그날 동틀 때까지 트럼펫 분 사람이 누군지 세사람은 알고있다.^^


언뜻 눈을 뜨니 일곱시.  너무 빠르다.  꼼짝말고 자자. 
잠시 후 형수가 눈을 뜨더니 하는 말. "아~~ 배고프다."   이런...  늦잠자긴 틀린거 같다. 
다른건 다 참아도 배고픈건 절대 못참는 형수의 입에서 배고프다는 말이 나왔으니...
먼저 씻고 앉으니 어쩔 수가 없다.

9시에 나와 근처의 식당에서 곰치국을 먹는데, 춘천만 해도 서울과는 달라
생선이 먹고 싶다고 하자, 식당식구들이 먹으려고 구운 이면수를 모두 우리에게 가져다준다.

길이 막힌다고 등떠미는 광호의 성화에 쫒겨 11시에 출발하여 집에 도착하니 한시반이 좀 넘었다.
집사람이 깜짝 놀란다.  왜 이리 빨리 왔냐는 반응.


짧은 시간이었지만, 모처럼 시간제한(?)없이 편안하게 친구들과 마주한 시간이었다.
기회가 된다면 다음엔 같이 통나무집에 가 고기라도 구워먹고 싶다.


집앞에 나를 내려주며 형수가 주먹을 쥐고 소리친다. "1박~~"
나도 주먹을 쥐어보이며 대꾸했다. "2일~~" 

비록 야생은 아니었지만 이렇게 우리도 리얼 1박2일을 한번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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