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기간 알고 지내면서도 덤덤한 사이가 있고
짧은 기간 알았지만 이상하리만큼 마음이 끌리는 사람이 있다.

이 친구 라비는 골프동호회에서 만났지만, 함께 라운딩을 한 기억은 없다.
정기모임시 몇번 만나고, 오프모임에서 술자리를 몇번 같이 한게 전부.

한밤중에 쓰러져 병원에 입원했을 때 병문안을 가고,
퇴원 후 1년쯤 지나 한번 만난 이후 얼굴을 보지 못했다.

입원 당시 중학생이던 딸아이가 벌써 대학 3학년이라니
소식을 모르고 지낸 기간이 5년은 족히 넘었는데,
이상하게 라비는 내 기억에서 잊혀지지 않았다.

문득문득 생각이 나고 보고픈 마음이 들 때 전화도 많이 했지만
늘 소식이 없어 아쉬움만 남곤 했다.
백혈병 판정을 받았기 때문에 생존 자체가 염려되기도 했다.

3주전 쯤, 또 문득 생각이 나길래 전화를 해봤지만 역시 신호만 갈 뿐 받지를 않는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모르는 전화를 받지않을 수도 있고,
또 내 전화번호가 바뀌어 연락을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문자를 보냈다.

그래도 응답이 없던 라비에게서 지난 월요일 저녁 드디어 연락이 왔다.

매일 생각이 났다면 거짓말이고, 뜨문뜨문 생각이 날 때마다
정말 어찌 지내는지 궁금했고 보고싶었다는 내 말에
"형 말이 꼭 내 마음이오." 라고 화답하는 라비.


그리고, 다음 날인 화요일, 라비가 친구와 함께 까사미오에 왔다.
가장 가까운 친구를 1년만에 만나면서 꼭 만나야할 형이 있다며 함께 온 것이다. 

오랜만이라든지 반갑다는 말조차 못한 무언의 진한 포옹에
그간 우리 두 사람의 서로에 대한 애정이 담겨있었다.

제일 고마운건 건강해보이는 모습.
이제 앞으로 1년만 별 일 없으면 혈액암이라 불리는 백혈병으로부터
해방이라는 의사의 긍정적인 소견이라는게 무엇보다 기쁘다.

건강회복 등 여러가지 사유로 그간 주로 지방에서 생활했다는 라비.
근데, 라비는 의외로 내 근황을 알고 있었다.

"이 형이 글재주가 있거든..  블로그같은게 있으거라 생각하고
 강하 이상범으로 검색하면 3시간 정도면 찾을 수 있지않을까 생각했는데,
 3분만에 나오더만.  그래서 형이 와인집 하는 것도 알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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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데, 형한테 좋은 모습 보이고싶어서 연락을 안하고 있었수.. 미안해.. 형."


아들도 군대를 다녀와 대학 3학년이고, 벌여놓은 사업도 자리를 잡아가고...
가정과 일, 그리고, 건강까지 모든게 좋아지고있는 라비에게서 따뜻함이 느껴졌다.


- 목소리 들려주고 이렇게 건강한 모습 보여줘서 정말 고마워..
   금년에 가장 크고 소중한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은거 같다.

> 형이 그렇게 얘기하면 눈물날라 그러지..
   날 그렇게 생각해주는 사람이 형 말고 누가 있어...  죽을 때 까지 빚 갚을께...

- 내가 뭘 해줬다고..  해준게 있어야 갚을 빚이 있지..
   그냥 이렇게 보고싶을 때 얼굴 보여주면 된다.



정말 저 환한 미소를 이제 다시 볼 수 있다니...
큰 선물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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