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원이는 또래 아이들에 비해 이상하리만큼 옷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

모자에, 후드 티 혹은 야구나 미식축구 유니폼 티, 그리고 헐렁한 청바지나 힙밥스타일 바지에 배낭이 일상 패션이다.

여자친구를 비롯해 누굴 만나든 똑 같다.

몸에 맞는 스타일을 싫어하고 뭐든 헐렁한걸 좋아하는데,

전에는 옷 욕심 안내는게 돈이 안들어 좋기도 했지만, 이제 20대 중반에 접어드니,

고정된 스타일이 너무 애들 같고, 후줄근해 보이기도해 엄마와 동생이 늘 아쉬워한다.


집사람이 '이제 나이도 있으니 여자친구 만날 때 옷차림좀 바꿔보라.' 해도, 신경쓸 상대가 아니란다.

지연이가 '오빠는 키가 크고 하체가 길어 패션스타일을 바꾸면 얼마나 멋있을텐데...' 해도 막무가내다.
사실 나도 좀 못마땅하긴 한데, 그때마다 본인은 늘 '아~ 됐어...  난 이게 편해, 내가 편하면 됐지...' 다.

사회생활이라는게 남의 시선에 맞출 필요도 있고, 만나는 사람에 대한 예의상 옷차림을 단정히 해야 할 때도 있다.
상대가 정장을 하고 나왔는데, 내가 편하다고 너무 캐쥬얼하게 입는 것도 예의가 아니다.
그러기위해 의도적인 연출이 필요할 때도 있다고 역설해도 마찬가지다. 
고집은 또 오죽 세야지...  그건 둘다 마찬가지다.
 
 

추석전날 네식구가 같이 점심을 먹고, 함께 백화점엘 들렀다.

추석날 부모님께 드릴 간식도 장만할겸 들렀다가 지연이가 모자를 보겠다하여 자연스레 캐쥬얼 매장엘 들렀는데,

여기서 갑자기 재원이 패션바꾸기 온가족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지연이가 매장에서 쟈켓을 하나 보더니, 오빠 입으면 멋있겠다고 바람을 잡은 것이다.
흘낏 쳐다보던 재원인 당연히 고개를 돌린다.  관심 밖이라는 뜻.
한번 입어보기만 하라고 꼬드긴 후, 마지못해 입고 나온 녀석에게 매장 점원을 비롯해 온가족이 원더풀을 연발.
와이셔츠도 절대 안입는 녀석에게 흰색 셔츠를 입히고는 다시한번 모두가 열광.

모두가
멋있다...  훨씬 늘씬해보인다...   키가 더 커보인다...   긴 하체가 더 살아보인다... 는 등, 온갖 찬사를 늘어놓으니,
조금 세뇌가 되는 듯 하다.

그렇게 해서 겨우 옷 하나 사줬다. 
남들은 사달라는거 뭘 사느냐고 말리기 바쁘다는데, 이건 완전히 반대다.
그리고 집에 와서 내친 김에 멋적어하는 녀석 붙잡고 기념촬영(?) 한 컷.


재원인 쟈켓이 너무 작은거 같다고 어색해 하는데, 
지연이 말에 의하면, 사실 오빠는 한 치수 더 작은걸 입어야 맵시가 더 나는거란다.

매장 점원의 말이 재밌다.
'너무 어색해 하시니, 오늘은 일단 요기까지 하시고, 다음에 서서히 줄여나가시는게 좋을거 같아요.'


다음 날인 추석 날.
연미사를 마치고 점심을 먹은 후, 지연이가 작업할게 있다고 나가더니, 상자를 하나 가지고 와서는 오빠에게 내민다.

'오빠... 그 복장에는 구두나 나이키 운동화 같은거 보다 이런걸 신어야 돼.'  그러면서 풀어놓은거...



'CONVERSE 운동화를 신어야 더 폼이 나거든... 오빤 키가 커서 밑창이 얇아도 되잖아..
 사실 이거보다 옆이 가죽느낌으로 된거 되게 멋있는게 있던데, 그건 10만원이 넘어 내 용돈으론 무리더라.
 좀 아쉽긴한데... 그래도 이 정도면 칼라가 괜찮을거야...'

그러면서 마무리멘트,
'이제 청바지만 하나 장만하면 되겠네...  일반 청바지 말고, 리바이스나 캘빈클라인 같은데서 [일자]나 약간 [나팔]같은거.
 그건 내 소관이 아니고, 이제 엄마 아빠 몫이지.' 

재원이가 '아~ 나... 딱 붙는거나 나팔 같은건 절대 싫어...' 하자,
'약간 나팔은 별로 표가 안나. 표 날 정도면 촌티나지...  
 하여간, 오빤 앞으로 머리 짧게 세우고, 딱 맞는 쟈켓에 일자 청바지 입으면 정말 폼 날거야.
 조인성이 뭐 별거야...   오빠 체형이 딱 내 이상형인데...' 라며, 한껏 오빠를 치켜세운다. 

엄마 : 야... 아들~~~  정말 멋지다...  앞으로 여자친구 만날 때 이러고 나가라...
나 : 너 그러고 부대 들어가면 쫄병들이 깜짝 놀라겠다. '이병장님.. 벌써 제대 준비하십니까??'  그러겠네...

처음엔 그리 완강하던 녀석이 가족들의 호응에 저도 싫진 않았나보다.
지연이가 사준 운동화도 부대로 싸들고 들어가려 한다.


사실 옷차림에 변화를 주는 것도 남들에게 다양한 이미지를 전해줄 수 있다는 측면에서 필요하다.
재원이도 이제 군대도 마치고 나면 좀더 세련된 이미지가 필요할 때다.

그날 지연이의 자켓 입은 모습이 너무 이뻐 지연이 쟈켓도 하나 샀는데, 집사람이 한마디 한다.

- 여보... 우리 애들 백화점에서 제대로 옷 사준게 처음인거 알아요?
> 그런가...??
- 재원인 맨날 이태원, 지연이도 동대문이나 강남지하상가에서만 옷 사입지, 언제 쟤가 백화점 옷 입어요?
   동대문에서도 한벌에 5만원만 넘어도 비싸다고 안사고, 티는 이만원 넘는건 아예 처다보지도 않는 앤데...
   지금 입고있는 티도 강남지하상가에서 만오천원주고 산건데, 대학교 3학년 여자애가 누가 그래요... 
   우리 애들은 진짜 옷값 안들어가는거야... 애들한테 고맙게 생각해야돼...

그건...  아이들에게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다.


추석연휴 아이들과 함께 하면서, 아이들이 내게 안겨준 즐거움이 많았다.

아이들이 대학 상급학년이 되도록 고급제품 등에 겉 멋이 들지않은게 고맙고,
재원이의 새로운 패션 변신 가능성이 즐거웠고,  지연이의 늘씬한 옷맵시가 흐뭇했으며, 
오빠 패션 코디 해준다고 할머니로 부터 받은 추석 용돈으로 제 오빠 운동화를 사온 지연이의 마음이 대견했다.

지연이의 멋진 모습을 사진으로 담지 못한게 좀 아쉽고, 정작 집사람은 아무 것도 하지 못한게 못내 미안하지만,
서로의 모습을 좋아하는 가족들의 모습에서 따뜻하고 푸근한 추석을 보낸거 같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 보름달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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