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앨범의 묵은 사진들을 스캔하는게 집에서의 큰 일이었다.

어느 집이나 마찬가지겠지만, 사는 기간에 비례해서 세간이 쌓이기 마련이다.
집에 뭔가 싸여가는걸 싫어하는 집사람은 가끔 한번씩 일제 정리를 한다.
입지않는 옷이나 사용하지않는 물건은 과감히 내다버리거나, 혹은 재활용함에 넣어둔다.

재밌는건, 주로 내가 사용했던 품목이나 가전제품의 경우 처음에는 하나라도 내게 버려도 되느냐고 묻더니,
갈수록 점점 묻는 빈도가 줄어든다. 집사람에 비해 물건에 대한 애착이 많은(실은, 우유부단의 미화된 표현이다) 
나는 버리지말라는 경우가 많은데, 쓸데없는 욕심일 뿐, 그 이후로도 사용하는 적이 없다는걸 파악한 것이다. 
살아오면서 집사람이 나보다 결단력이 강하다는 생각을 많이 하는데, 이렇게 정리를 할 때도 나타난다. 

질문이 "이거 버려도 돼요?" 에서, "이거 버려도 돼죠?" 로 바뀌는가 싶더니, "이거 버린다.." 는 통보로 바뀌고,
그 다음엔, 내가 건드리는 경우가 없는 품목은 아예 묻지도 않고 독자적 판단으로 폐기처분한다.
그러다보니, 어느 순간 옷이 확 줄어들고, 어느 때는 비디오 테이프가 없어지는가 싶으면,
갑자기 음악CD가 통채로 안보인다.   그런데, 예외가 하나 있다.  참 고맙게 생각되는게,
나의 추억이 담겨있다고 판단되거나 내게 기념이 될만한 것은, 절대 버리지않는다.

CD는 모두 정리를 하면서도, LP판은 남겨둔 것이 그런 예다.
어차피 집에 턴테이블이 없어 LP를 들을 수 없음에도 그건 버리지 않는다.
CD야 요즘 얼마든지 인터넷에서 다운을 받아 취향대로 재구성할 수 있지만,
그 LP에 담겨있는건 단순한 음악이 아니라, 적은 용돈으로 모은 학창시절의 추억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렇게 정리할 때는 미련없이 화끈하게 하는 집사람도 손을 대지 못했던게 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그린 그림과 글, 그리고 일기장과 앨범이다.
우리 가족, 특히 아이들의 성장과정과 추억이 고스란히 담겨있기 때문이다.

그 중에 앨범이 드디어 집사람의 숙청대상에 걸려들었다.
사실 앨범.. 이거 참 골치덩어리다.  버리자니 미련이 남고, 보관하기엔 너무 양도 많고 무겁기도해
이삿짐 중에 가장 골치아픈 것 중에 하나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제 스캔이라는 좋은 툴이 있으니, 굳이 사진을 보관할 필요가 없다.
물론, 보는 느낌이 다를 수 있지만, 스캔의 좋은 점이 있다.
아이들이 둘 이상일 경우, 함께 찍은 사진은 아이들에게 골고루 나눠줄 수가 없지만,
스캔 후 복사하여 아이들별로 구분하여 CD로 만들면 함께 찍은 사진을 모두에게 줄 수가 있다.
그것도 보관도 간편하게. 

일단 생각이 결정되면 신속하게 실행으로 옮겨지는 집사람이 결국 수많은 앨범을 모두 해체했다.
그리고, 해체된 앨범에서 나온 수백장 이상의 무수한 사진을 스캐닝하는건 나의 몫.


여기서 다시 나타나는 나의 고질병.

스캔의 목적이 사진을 버리기 위함임에도, 막상 사진을 폐기하려고 들여다보면 다시 마음이 약해진다.
사진 속에 함께 있는 사람에게도 괜히 미안하고..  좋은 느낌의 사진은 정말 아깝기도 하고..
이미 다 PC에 저장되어 있음에도...      

그런 내 속마음을 알았는지, 집사람이 자신의 대형 독사진 두장을 가차없이 찢어버린다.
윽~~  그 기세에 눌려 이후 내손은 자동분쇄기가 되고말았다.



그래도 그 와중에 내 눈에 들어온 나의 옛 모습들.




  모범여사원 40여명을 인솔하고 일본연수를 갔을 때인거 같다.
  나도 이렇게 넥타이를 맨 적이 있었구나... 




  여기는 호주의 어느 해안이고...




  저 코알라는 인형이 아니라 실물이다.   잠 많은 녀석의 얼떨떨한 표정이라니.. 



지연이가, 어쩜 세장의 사진이 모두 옷과 배경의 color tone 이 일치하냐고 놀란다.


남들에게 항상 남편이 인물은 없다고 말하는 집사람에게 물었다.

- 여보.. 나이 마흔에 이 정도면 그래도 괜찮치않았냐..??  그렇게 비관적인건 아니었던거 같은데...
> ... 그러게... 이렇게 보니까 반듯하네..  근데, 그땐 왜 그렇게 안보였지...
  왜 강경애 여사도 "인물은 없지만..." 이라 그랬을까...^^

강경애 여사는 우리 결혼 넉달 전에 돌아가신 장모님이시다.
에이~  조금만 기다리셨으면 못난 오리가 쬐끔 더 나아진 모습 보실 수 있으셨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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