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물건사는데 엄청 뜸을 들이는 편이다.
좋게 말하면 충동구매가 거의 없다고 할 것이고, 반대의 시각으로 보면 물건 하나 사는데 엄청 쫌스럽다고나 할까...

내가 무엇을 구매할 때 어쩔 수 없이 나타나는 습관이 있다.

어떤 것에 대해 feel이 꽂혀 구매욕구가 생기면, 일단 그 물건의 특성에 대해 자세히 살핀다.
- 내가 막연히 끌렸던 기능 외에 다른 어떤 기능이 있는지... 
- 그 각각의 기능이 과연 내게 필요한 기능인지... 

구매대상에 대한 분석이 끝나면 그 다음엔 그 품목과 동일한 경쟁 브랜드의 상품에 대해 비교분석을 한다.
- 비교대상 품목 각각의 장단점은 무엇인지...
- 각 상품에 대한 유저의 반응은 어떤지...
- 가격대비 기능의 효율성은 어떤지...

이런 과정을 거쳐 사고자 하는 품목의 범위가 좁혀지면 다음으로 보는 것이 출시시기다.
시중에 출시된지 얼마되지 않은 것은 아직 제대로된 평가가 부족할 수 있으며,
특히 전자제품의 경우 버그에 대한 검증이 부족한 반면,
출시된지 너무 오래된 제품은 업그레이된 후속기종의 출시에 따른 가격 변동폭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전자제품의 경우에는 출시시기에 따라 가격폭에 상당한 차이가 있을 수 밖에 없다.


보통 이런 과정들은 인터넷을 통해 하게 되는데, 이런 절차를 거친 후에는 직접 매장에 나가 눈으로 확인을 한다.
눈으로 직접 보고 손으로 만져보면 사진으로나 설명만으로 이해되는 것과는 또 다른 차이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맘에 든다는 생각이 들면, 가격비교 사이트를 통한 가격비교를 하게 된다.
동시에 인터넷 벼룩시장을 통해 중고품의 가격과 신품의 가격을 비교한다.
내 기준으로는 고가제품일수록 중고제품의 구매효용가치가 크기 때문이다.
고가장비를 사용하는 매니아층일수록 제품에 대한 애정이 강해 보관상태가 좋고 물건에 결함이 거의 없다.
그런 사람들이 내놓는 중고제품은 물건에 대한 결함이 있어서가 아니라, 업그레이드에 대한 욕구때문이라
상품의 품질이 거의 보장된다.  때문에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하자없는 물건을 구입할 수 있다.

지금 우리 식구들이 애용하고 있는 것 중에는 중고제품이 많다.
나와 집사람이 이용하는 자동차도 그렇고, 나의 노트북도 그렇고, 딸아이의 카메라도 중고제품이다.
딸아이와 내가 사용하던 휴대폰도 중고 휴대폰이었다. 휴대폰을 직거래하기 위해 수원까지 가기도 했다.
골프를 칠 때 사용하던 골프클럽도 당연히 중고를 선호했다.

그렇다고 가격만을 기준으로 구매하는건 아니다.  다들 그러하듯이,
브랜드에 대한 가치, 판매자에 대한 신용도, 그리고 A/S 에 대한 신뢰감을 함께 판단한다. 


이렇게해서 나름대로의 모든 검증과정이 끝나게 되면 마지막으로 내게 던지는 질문이 있다.
'이걸 과연 얼마나 자주 쓸거 같은데...???'
이 과정에서 구매를 포기당한 품목이 엄청 많다.

아무리 맘에 들어도 자주 사용할게 아니라면 그건 가치에 대한 욕구가 아닌
단순히 물건에 대한 욕심이나 객기에 지나지 않는다.  말하자면 분수를 넘는 탐욕이라는 것이다. 
자주 쓰지도 않을 것을 순간적인 욕구나 충동에 의해 구매를 하게되면 반드시 후회를 하게되며,
그 순간부터 그 물건은 더 이상 나의 필요품이 아닌 불필요한 애물단지에 지나지 않는다.
집안의 짐인 것이다.  그렇게 장고를 하더라도 지금도 집에는 시행착오를 겪은 짐들이 있다.


나의 뜸들이는 구매방법은 하다못해 모자나 수첩을 하나 살 때도 한번에 사는 법이 거의 없다.
혹시라도 더 마음에 드는 물건이 눈에 뜨이면 후회하지 않으려고 돌아다니며 보고 또 보고, 
같은 물건을 몇번씩 보러다닌다.

그러다보니 아쉬운 적도 많다.
충분히 시장조사를 마친 후, '그래... 그때 그게 제일 낫다.' 고 생각하고 막상 그 물건을 구매하러 가면,
이미 그 물건이 없는 경우도 많았다.  그때는 '그때 바로 샀으면...' 하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집사람도 어떤 때는 '당신 너무 한다.' 고 지적을 하곤 하는데, 어쩌겠는가..??  그것도 성격인걸...
그리고, 어떤 때는 스스로 '내가 너무 쫌스러운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충동적이고 즉흥적인 것 보다는 낫다고 스스로 위안하며 당위성을 찾는다.

하지만 뜸을 오래 들이다보면 이 물건이 정말 내게 필요한 것인지가 저절로 판정이 난다.
꼭 필요한 것이 아니라면 뜸을 들이는 동안 구매욕구가 시들해지기 때문이다.
일시적인 충동이나 욕심이었을 뿐이다.

이렇게 스스로는 구매의 실용성을 강조하는 편이다.
하지만, 실용적 가치보다 소장가치를 우선하는 경우도 아주 드물지만 있다.
한번은 남대문에서 27만원 한다는 한정생산하는 기념 몽블랑볼펜을 발견하고는 몇날 몇일을 고민하다 구입을 했다.
그때 집사람의 반응은 어이없음 그 자체.
사실 볼펜 하나를 27만원 주고 산다는 것은 평소 나의 가치기준으로 볼 때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한참이 지난 어느 날 현대백화점의 몽블랑코너에 우연히 들렀다가
코너 담당직원이 내 몽블랑볼펜을 보고는 꼭 찾는 사람이 있다며 50만원에 구매를 하겠다는 소리를 듣고
집사람은 그 자리에서 입이 쩍 벌어진 적이 있었다.  

가끔 주위사람들이 무엇을 구매하고자 할 때,
내가 가지고 있는 것, 혹은 우리 집에 있는 것을 그대로 사는 경우가 있다.
그 사람들의 말인즉, '오죽 잘 판단해서 골랐겠어...'


아~~ 또 하나 나의 구매특성이 있다.
어떤 물건을 구매할 경우 나는 가급적 상위모델을 구매한다.  특히 전자제품의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안그래도 시시각각으로 기능과 성능이 변하는게 요즘의 제품개발 트렌드인데, 가격의 저렴함 만으로
어중간한걸 구매했다가는 얼마안가 업그레이드된 제품에 대해 해바라기가 되기 때문이다. 
때문에 출시된 제품 중에는 가격이 조금 높더라도 고급사양을 선호한다.
시시각각 진화하는 기능에 비교적 오래 버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중고시장에서도 후한 평가를 받기 때문이다.   


요즘 DSLR에 대한 지름신이 강림하셨다.
위에 언급한 시장조사 절차에 따라 이런저런 과정과 비교분석 끝에 기종을 정해놓고는
마지막 관문인 자문(自問)을 하고 있다.
'과연 이걸 산 다음 얼마나 찍을껀데...??  들고다닐 시간이나 있나???'

자신있는 답이 안 나오는걸 보니, 이번에도 한참 걸릴거 같다.

에구~~~  이 소심함이라니...

하지만, 그 소심함이 없었더라면,
나는 지금도 집과 사무실에 쌓여있는 수많은 물건을 후회스런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소심했음에도 후회스런 물건이 눈에 보이는 마당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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