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전화벨이 울려 받아 보니 시사회에 응모한 것이 당첨이 되었단다.
난, 내가 언제 어디에 무엇을 응모했는지 기억도 안나는데 뭔 당첨이라니...
그래서 시사회 초대권을 받아 쥐고 본 영화가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세상에 태어나서 영화가 개봉되기 전 시사회에서 본 경험은 처음이다.
영화에 대한 사전 지식이 전혀 없던 나는 교보문고에 진열된 소설을 본거 같아 교보문고를 찾았다.
일단 대략적인 장르라고 알고 봐야할 거 아닌가.
[악마]라는 단어가 들어가니 이게 스릴러 영화인지, [프라다]가 들어가니 무슨 패션 영화인지...
책을 통해 대충 알아보니,
원작은 2003년에 발간되어 27개 언어로 번역되었고, 뉴욕타임즈 베스트셀러에 6개월간 올랐고,
국내에서도 금년 5월 출간되어 대형서점 판매 1위다.
이 책이 더욱 화제가 된 것은,
이 책의 실제 인물이 패션지로 유명한 미국 [VOGUE]의 편집장 (안나 윈투어) 이기 때문이란다.
더 재밌는 것은 원작자가 안나 윈투어의 비서였다는 것.
그렇다면, 소설 속 비서는 자신이 모델이었을까...
그렇더라도, 왜 제목이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일까...
영화를 보니 어느 정도는 짐작이 가는거 같다.
잡지사 저널리스트를 꿈꾸던 앤 해더웨이 (앤드리아役)는 자기 희망과는 달리 유명한 패션 잡지사인 런웨이에 입사를 한다.
하지만, 그녀는 패션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런웨이가 패션계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 잡지인지도 모를 뿐 아니라,
패션계의 대모 격인 런웨이 편집장 메릴 스트립 (미란다役)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다.
더구나, 그가 맡은 업무는 엉뚱하게도 편집장의 비서. 그것도 보조비서다.
앤드리아는 괴팍한 성격의 미란다와 부딪히면서 회사와 패션문화에 적응해 나간다.
하지만, 이 영화가 단순히 패션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다.
영화는 대학을 갓 졸업한 소박하면서도 평범한 한 사회 새내기 여성이,
처음 맞는 직장에서 이상과 다른 세계에 적응하며 겪는 갈등을 보여 준다.
화려한 무대에서 몰라보게 세련되어 가지만, 자신도 모르게 상실되어가는 부분이 있음을 뒤늦게 깨닫고
자기의 자리로 돌아온다는 내용.
이 영화에서 가장 강렬하게 기억에 남은 것은 현란할 정도로 빠른 카메라 워킹과 반복 편집이다.
특히 영화 도입부분, 편집장이 출근하며 비서에게 코트를 벗어 던지는 장면의 빠른 반복은
미란다의 괴팍한 성격을 잘 묘사해 주었다.
하지만, 감독이 이 작품을 통해 보여주려 했던 것이 '무엇이 삶의 가치인가' 였다면,
그런 가벼운(?) 테크닉이 그런 메시지의 전달을 오히려 가볍게 만들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있다.
메릴 스트립의 연기는 포스가 느껴질 정도로 강렬하다.
패션계 거장으로서의 카리스마가 강하게 느껴지는 냉소적인 표정,
특히, 상대방을 비아냥거리는 듯한 싸늘한 눈초리가 압권인데,
남편과 이혼 후 한순간 일렁이는 화장기 없는 얼굴에서 묻어나는 쓸쓸한 눈빛과의 대비를 보며,
연기에 대한 그녀의 경륜을 느낄 수 있었다.
반면, 앤 해더웨이의 매력은 순수함을 잃지않는 세련된 이미지가 아닐까 싶다.
개인적으로 커다란 눈망울이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영화는 가볍다.
때문에 가슴 뭉클한 감흥은 없다. 좀 진부한 느낌도 있다.
또 그래서 가볍게 보기 편하다.
빠르게 변하는 장면 속의 무수히 많은 패션을 보면서 젊은 여성들이 즐거움을 느낄 수도 있다.
그런데, 엉뚱한 면에서 이 영화는 내게 흥미를 주었다.
독선적이고, 직선적이며, 무지하게 급한 성격의, 주변 사정이나 남의 생각은 아랑곳하지 않고
시도 때도 없이 부하에게 지시를 내리는 일중독 상사.
그런 상사의 상식에 어긋나는 지시에 대해, 단순한 상명하복이 아닌,
'누가 이기나 보자' 는 식으로 오기로 이겨 나가는 부하의 대결구도를 보며,
영화를 보는 내내 직장생활 시절 내가 모셨던 상사와 나의 모습이 생각났다.
집단 속에서 나를 성장하게 만들어주신 그 분과 어쩜 그리도 같은지... 웃음이 나왔다.
샐러리맨들에겐 관전포인트가 있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영화 제목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의 의미는,
명예나 권력을 맛 본 사람은 결코 그 명예와 권력을 포기하지 못 한다는 메세지가 아닌가 싶다.
명예와 권력에 대한 끊임없는 욕망을, 명품에 대한 중독성에 비유했다는 생각이다.
영화 끝까지 풀리지 않는 궁금증 두 가지.
- 인간의 욕망을 왜 수많은 상표 중 프라다에 비유했을까? 짝퉁이 가장 많아서일까...
- 영화 속에서 편집장은 비서의 호칭을 격에 따라 [안드리아]와 [에밀리]로 구분을 하는데, 무슨 의미가 있는걸까??
혹시 원작을 보면 그 의미를 알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메릴 스트립] [앤 해더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