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수 없는 사용자 2007. 9. 22. 01:21

지난 주 일요일 당진에 성묘를 다녀왔다.
그곳에는 증조, 고조, 증고조 할아버지가 계시다.
둘째 할아버지도 그곳에 계신다.
그러니 벌초 겸 다녀온 것이다.

당진에 가면 5촌당숙들과 6촌형제들을 만난다. 보통 50여명이 모인다.
내게는 증조할아버지가, 5촌당숙들께는 할아버지로서 한뿌리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당숙들의 돌아가신 아버님들이 그곳에 함께 계시기 때문이다.
 
어제는 천안공원묘지에 다녀왔다.
그곳엔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계시기 때문이다.
천안에서는 숙부님들과 사촌형제들을 만난다.
보통 15명 정도가 모이는데, 대개는 며칠 전 당진에서 본 얼굴들이다. 
범위가 좁혀지면서 참석인원은 적어지지만, 혈연관계로 보면 그만큼 더 가까운 혈족이다.
천안공원묘지는 관리를 잘 해주기 때문에 특별히 벌초할 일은 없다.

해마다 두번, 한식과 추석전후 에는 이렇게 당진과 천안을 찾는다.
그런데, 성묘를 다닐 때마다 상반되는 두가지 상념이 머리 속에서 충돌을 일으킨다.
전통의례로써 [조상님 모시기]와 [경제활동 측면에서의 효율성]이다.


성묘가 주는 긍정적 요인이 있다.
우리나라 전통철학의 근본이 되는 유교적 관점에서의 조상에 대한 인사는 차치하더라도
점점 만남의 기회가 줄어들어가는 친척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 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
사실 나만 하더라도 당진 성묘가 아니면 6촌형제들을 볼 기회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리되면 결국 누가 누군지 잊고 사는게 되는거 아닌가.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런 모임이 너무 형식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드는게 사실이다.
산지사방에 흩어져 사는 사람들이 서로 시간을 맞춰 모여서
산소 앞에서 절만 하고, 식당에 가서 식사를 하고는 바로 뿔뿔이 흩어진다.
특히, 주중일 경우 각자의 일을 미루고 나와야 한다. 

나는 할아버지를 기억하지 못한다.  뵌 적이 없기 때문이다.
반면에 둘째 할아버지는 어린시절의 기억에 남아있다.
둘째 할아버지께서는 내가 어렸을 적 우리 집엘 오시면
늘 나를 무릎에 앉히시고는 머리를 쓰다듬으며 귀여워해 주셨다.
그때 그분의 그 인자하신 모습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때문에 다른 분들의 산소에서는 기계적인 절을 올리지만,
둘째 할아버지께 절을 드릴 때는 그분의 모습을 떠올리며 마음을 담아 절을 올린다. 

감사하는 마음은 상대를 기억할 때 진정성이 생기는 것이다.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마음으로 절을 올리고는 서둘러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기 바쁜
이런 의례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어제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얼굴을 뵌 적 없는 조상님들에게 그런 마음을 담지 못하는 내가 문제가 있는건가...  
   

나의 아버지 입장에서는,
천안에는 부모님이 계시고, 당진에는 할아버지 이상, 그리고 숙부님들이 계시다.

내 부모님 두 분은 아마 국립현충원로 모시게 될 것이다.
납골당을 이용하시게 되면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으로 모시겠지만,
묘소를 쓰신다면 대전 국립현충원으로 모시게 된다.

그렇게되면 나의 경우,
부모님은 대전, 할아버지는 천안, 그 위 할아버지들은 당진에 계시게 되는데,
나 혼자 움직이는거라면 그나마 별 문제될게 없다. 
내가 편리한 시간에 혼자 시간을 내어 하루에라도 세 곳을 찾아뵈면 되니까.

문제는 내가 종손(宗孫)이라는거.
당진에는 6촌형제들을 불러 모아야 하고, 천안에는 사촌형제들을 모아야 한다.
대전에는 내 동생과 시간을 맞춰야 한다.

예전에는 선산이라는 개념이 있어 종중 소유의 땅에 친척들을 같이 모셔 함께 제사를 모셨지만,
요즘이야 다들 따로 모시지 않는가.
그러니 참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 다음 세대는 이런 혼란이 오히려 없을지 모른다.
전통적 사고에 대한 인식이 흐리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라도 제사나 성묘에 대한 문화는 사회적 이슈로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예전에 신문에서 읽었던 어떤 교수의, 자식에게 남긴 유언 내용이 생각난다.
' 내가 죽거든 화장을 해서 강물에 보내기 바란다.  그리고 일체 나를 위한 제사나 별도의 의식을 하지 마라.
  단지, 너희 형제간의 우의를 위하여, 내 생일이나 내가 죽은 날 너희들끼리 모여 식사를 같이하기 바란다.'
이런 내용으로 기억하는데, 그때 이 글을 읽고 가슴이 뭉쿨했었다.


남아있는 세대에 대한 배려...  그것이 가는 세대의 마지막 책임이라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