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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의미를 안겨주는 선풍기

江河 2011. 7. 4. 19:50

해마다 여름만 되면 자꾸 뭔가 생각케 하는 물건이 있다.  
아버님을 찾아뵐 때마다 눈에 보이는 이 것.

 
 



우리 집에 들어온 시점이 내 막내동생이 태어난 1963년이니 만으로 48년이 됐다.
구입일 기준으로 48년이고, 제조일은 더 이른지도 모르겠다.

지금도 여름이면 두 분은 에어컨 대신 이 선풍기에 의존하시는데,
이 녀석을 볼 때 마다 두 가지를 생각케 된다.

하나는, 일본이 정말 제품 하나는 튼튼하게 만들었다는거.
48년 동안 고장 한번 난 적 없이 지금껏 튼실히 돌아가고 있으니, 정말 대단하다.
그동안 국산 선풍기 몇 대가 거쳐간 것과 비교해도 얼마나 잘 만들었는지 알 수 있다.

그리고, 그보다 더 놀라운건,
저 것을 아직껏 중히 사용하시는 두 분, 특히, 아버님의 알뜰함이다.
기기 자체의 튼튼함이 장수의 기본이었겠지만, 여지껏 관리를 잘 해오신 꼼꼼함도 큰 몫을 했을 것이다.
또한, 수없이 개량되고 진화된 냉방기기의 홍수 속에서도 그토록 오랜 기간 물리지않고 고집스레
사용하시는 그 알뜰함은 내게 늘 경이의 대상이다.

두 분의 집에도 에어컨은 있다.
언제 구입하셨는지 기억도 안 날 정도로 15년도 훨씬 오래 전 구입하신거지만,
아마 가동도 안 해본 해가 더 많을 것이다.
손님이 오셨을 때만 잠시 가동할 뿐, 두 분만 계실 때는 에어컨을 트는 적이 없으시다.
항상 저 선풍기가 역할을 대신한다. 
때문에 여름에 우리가 찾아뵐 때도 에어컨 혜택을 본 적이 거의 없다.  


내가 초등학교 때 부터 내 눈에 익숙한 저 선풍기.
언젠가 두 분이 돌아가시게 되면 저 선풍기는 어떻게 될까?
동생은, 제조사 제품 박물관에 양도하면 좋지않느냐는 아이디어(?)도 냈지만,
언젠가는 내게 깊은 생각을 안겨줄 숙제가 될거 같다.


저 선풍기는 단순한 선풍기가 아닌,
아버님 삶의 한 단면이자, 87년간 그 분이 살아오신 가치관의 상징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