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폴더/나, 그리고, 가족
유학의 동력이 된 지연이의 책상
江河
2010. 5. 18. 00:08
지연이가 사용하던 책상.
유난히 책 욕심이 많은 지연이의 책상 수납장을 빽빽히 채웠던 책들은
지연이가 벌써 정리를 마쳤다. 버릴 것은 버리고, 가져갈 책은 챙기고.
매사 치밀하게 계획을 세우고 꼼꼼하게 점검을 하는 지연이는
자신이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유학에 필요한 준비를 이중삼중으로 점검하고 확인해왔다.
국내에서 준비해야할 서류들은 물론, 뉴욕에서 묵을 숙소도 인터넷을 통해 미리 선정하여
집주인과 직접 통화까지 마치고, 심지어는 맨하튼 내의 아르바이트 할 곳까지 뒤지고 있었다.
저 책상의 전면 보드판과 책상 위 유리덮개 사이에는 온갖 메모가 빼곡했다.
자신의 지난 행적 중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되는 것.
현재 진행 중이거나 추진 중인 사항에 대한 점검표.
현재 하는 일이 끝나면 앞으로 단기간에 해야할 일.
장래 계획하고 있는 꿈과 희망, 목표 등등... 미래설계.
저 책상엔 지연이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가장 핵심적인 것들이 요약되어 있었다.
때문에 가끔 저 책상을 들여다보면 지연이가 하는 일, 생각하는 것들을 듣지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런 지연이의 모든 일상을 나타내던 책상이 이제 텅 비어있다.
이제 뉴욕 맨하튼의 어느 작은 방에 지연이의 행적과 미래가 다시 붙여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붙여지는 것들이 새로운 지연이를 만들어 나갈 것이다.
자연이를 보내고나니 몇가지 생각이 떠오른다.
먼저, 지금 이 시점이 아이들과의 관계에서 한 획을 긋는 단계라는 생각이 든다.
이제 아이들과는 몇년간 직접적인 만남은 없을 것이다.
물론 온라인이나 통신수단을 통해 대화를 하겠지만, 일상의 간섭(?)은 없는 것이다.
우리가 아이들을 다시 만나게 된다면, 그땐 아이들도 30대를 바라볼 것이고,
성장기의 아이들은 이제 곁을 떠난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아버지의 역할에 대해서도 새삼 돌아보게 된다.
이제 아이들과 대면하며 직접 해줄 수 있는게 없다는 생각이 드니
과연 나는 아이들에게 어떤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아버지였나 하는 궁금증이 든다.
막연하게 생각하면 그래도 평균 이상의 70점은 되지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 미래에 대한 안목과 아이들에게 알맞는 비젼 제시
- 아이들의 장단점에 대한 객관적인 인식
- 아이들과의 의사소통 빈도와 개방성
- 아이들에 대한 애정(관심)과 교감능력
- 아이들의 아버지 언행에 대한 신뢰도
- 아버지에 대한 정신적인 의지도
- 재정적 후원능력
등등.. 아버지의 자격이나 역할에 필요한 구체적인 평가항목을 몇가지 설정하여
냉철하게 생각하니 스스로 생각해도 점수가 그리 후하게 나올거 같지가 않다.
생각이 그리 미치자 많이 아쉽다.
지연이를 보내놓고 생각하니 못해준게 왜 그리도 많은지...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가 아쉬움이 남는다.
아이들이 한국에 있을 때도 집은 늘 빈 공간이 많았다.
재원이는 군대에 있었고, 지연이도 계속되는 공연준비에 집에 있을 겨를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렇게 익숙한 빈 공간 임에도, 막상 둘 다 이 땅에 없다고 생각하니 뭔가 어색한 이 느낌은 뭘까...
마치 누군가가 늦은 시각에 지친 표정으로 현관문을 열고 들어올거 같기도 하고,
내가 늦게 들어오면 아이들이 사용하던 방의 불빛이 새어나올거 같기도 하다.
"아빠는 컴퓨터와 카메라만 있으면 혼자서도 잘 놀아.." 라는 집사람의 말 처럼
비교적 혼자 잘 노는 편 임에도, 산란한 감정이 자리를 잡으려면 약간의 시간이 필요할거 같다.
가족의 체취는 후각으로 느끼는 것이 아니라, 영감으로 느껴지는 것이고,
가족은 눈으로 보는게 아니라, 마음으로 보기 때문인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