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폴더/나, 그리고, 가족
지연이의 졸업식
江河
2010. 2. 18. 05:30
우리 때는 코스모스졸업이라는게 있었다. 대개 학년이 마무리된 2월에 졸업식을 하지만,
휴학이라든지 여러가지 사유로 학기가 어긋나는 졸업생을 위해 8월에도 졸업식을 한번 더 했다.
그런데, 요즘은 코스모스졸업이라는 개념이 없는 모양이다.
지연이도 작년 상반기에 모든 학사일정을 마쳐 사실상 졸업을 했음에도,
졸업식이라는 의식은 못한 채 있다가 어제 졸업식을 했다.
대학졸업식에 가본게 얼마만인지... 정말 수십년은 된거 같은데, 많은 변화가 보인다.
우선, 우리 때는 전체 졸업생을 대상으로 졸업식이 이루어졌는데,
지연이네 학교의 경우 단과대학별로 시간을 달리하여 졸업식을 한다.
지연이네 학교만 그런지, 요즘 대학들이 다 그런 방식인지는 모르겠다.
흥미로운건,
지연이네 학과의 경우, 단과대 졸업식이 끝난 후 학과졸업식을 별도로 한번 더 하더라는 것.
학과의 특성인지 젊게 느껴지는 교수님들의 모습에서도 여유로움과 편안함이 엿보인다.
연극학과 학과장이신 박동우 교수님은 다소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시다.
연세대학교 경영학과 졸업 후 미국 유학시 전공이 엉뚱하게도(?) 무대디자인으로 바뀌었다.
미국에서 성황리에 공연된 뮤지컬 [명성황후]와 얼마 전 국내에서 호평을 받은 뮤지컬 [영웅]의 무대디자인을 하신 분.
보통 학위증은 졸업식이 끝난 후 학과사무실에서 받아갔는데, 이렇게 개인별로 학위수여식을 하는 것도 좋아보였다.
앉아있는 졸업생 중 낯익은 얼굴이 보인다.
요즘 주말극 [민들레가족]에서 좋은 연기를 보여주고있는 텔런트 이윤지 양.
지연이에게 물어보니 지연이보다 2년 선배라는데, 인기연예인 답지않게 학교에서는 무척 소탈한 모습으로 학과에도 열심이라고.
연극과는 연기활동으로 인한 휴학 등으로 졸업이 늦어지는 경우가 태반인데, 금년 졸업생의 경우,
지연이보다 2년 선배부터 1년 후배까지 있단다. 하긴.. 지연이도 어학연수로 1년이 늦어졌으니...
재학생 대표의 선배들에게 드리는 송사와 졸업생 대표의 답사.
졸업생 대표의 첫마디는 이랬다.
"오늘 이 자리에 저희 어머니는 안계십니다... 제 어머니께서는 작년에... ..." 그리고는 잠시 말이 끊어졌다.
'아~ 어머니가 작년에 돌아가신 모양이구나..' 라는 생각과 함께 괜히 나도 숙연해지는 사이, 졸업생 대표의 말이 이어졌다.
"제 어머니께서는 작년에 제가 졸업한 걸로 아십니다." 순간 실내가 한꺼번에 빵~ 터지고 말았다.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극적인 반전.. 역시 연극과 답다.. ㅋㅋ~~
졸업생들이 교수님들께 [스승의 노래]를 바치고 있다.
이런 모습도 대학졸업식에서 쉽게 볼 수 없는 풍경. 눈물짓는 여학생의 모습이 살갑게 느껴진다.
이렇듯 격식에 구애받지않는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교수님들과 선후배, 그리고 가족들이 함께 모여 하는 졸업식은
마치 시골 분교의 졸업식을 보는 것 같은 푸근함과 정감이 느껴져서 좋았다.
지연이가 가장 아낀다는 후배. 군대 용어로 연출 사수와 조수 사이란다.
새로운 세계로의 비상을 다짐하며..
과 구호와 과가(科歌)로 마무리하는 모습.
졸업식이 끝난 후 유일하게 세 식구가 함께 찍은 사진.
남들 다 한두개씩은 안고있는, 그 흔한 꽃다발도 없이 졸업식 사진을 찍은 지연이. 어차피 버릴거 필요없단다.
학사모와 졸업가운을 입은 모습으로 가족사진 한장 찍을 생각조차 못한 우리 세 사람. 우린 정말 별난 사람들이다.
이제 하나의 과정을 거친 지연이...
그리고, 8월에는 미국으로 건너가 또 다른 과정을 시작하는 지연이.
부디 자신이 선택한 길에서 의미를 찾기를 바라며 아빠로서 해주고싶은 이야기가 있다.
점심을 먹으며 네가 그랬지.. "우린 어떻게 졸업 축하한다는 얘기를 안하지??"
그래.. 엄마나 아빠는 졸업 축하한다는 말도 못해주고 있었어.
엄마와 아빠는 오늘이 일단락을 짓는 날이 아니라, 너의 도전이 계속 이어지는 나날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지연아~ 먼지 폴폴 날리는 비포장도로가 걷는 맛이 난단다.
주변의 수목과 곤충도 보고, 돌도 걷어차보렴.
너무 조급하게 멀리있는 목적지만 바라보지 말고
한발 한발 내딛는 네 발이 무엇을 딛으며 가는지 보렴.
차가 지나면 먼지가 일고, 비가 내리면 질척이는게 비포장도로지만,
그런 다양함을 보여줘야 하는게 네가 가야할 길이잖아.
가끔은 먼지를 먹으며, 때로는 질퍽거리는 길을 꿋꿋이 걸어가기 바란다.
그 끝에 무엇이 있는지 궁금할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