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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사람과 휴대폰
江河
2009. 8. 25. 02:56
우리 세대의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듯 집사람의 기계에 대한 생각은 단순하다.
기계 본연의 기능만 활용할 줄 알면 된다는 것.
예를 들자면, 런닝머신은 달리는 것, 자동차는 타고 굴러가는 것이다.
따라서, 집사람의 휴대폰에 대한 개념은, 필요할 때 전화하고, 문자 주고받을 정도면 충분하며,
하나 더 첨가한다면 휴대폰으로 사진 찍을 줄 알면 되지, 그 이상의 기능은 굳이 알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근데, 내가 표현은 [우리 세대의 많은 사람들]이라 했지만,실은 이건 세대의 차이가 아니라 성격의 차이인 것 같다.
여하튼, 집사람과 나의 가장 큰 차이점은 기계에 대한 관점이다.
집사람이 단순함을 추구하는 반면, 나는 기능의 다양성을 추구한다.
그러다보니 가끔은 다 써먹지도 않으면서 기능이 복잡한걸 고집한다.
어찌보면 집사람이 실용적이고, 또 어찌보면 내가 실용적이다.
또 하나 집사람의 기계를 대하는 특징은 일단 구입하면 소유 및 활용기간이 꽤나 오래 간다.
여간해선 바꿀 생각을 하지 않는다.
처음 운전면허를 따고난 뒤, 익숙해질 때 까지 연습용으로 타고 익숙해지면 새로 바꿔준다며 구입한
운전연습용(?) 중고차를 그 뒤로도 10년을 탔다.
우리 집에서 사용 중인 가전제품들 - 냉장고, 세탁기, 청소기, 식기세척기, 심지어는 선풍기 까지 -
대부분은 거의 모두가 10년 이상 된 것 들이다.
식기세척기 같이 필수 제품이 아닌 것은 작동이 제대로 안되면 그냥 사용을 안한다.
자동차만 해도 너무 낡아 내가 보기에 미안해 바꾸자고 하면, "괜찮은데 왜? 내가 얼마나 탄다고..." 하고는
그 이상 반응이 없다. 오죽하면 내가 보다못해 바꿨겠는가.
옷이나 액세서리에 대해서도 그렇다. 내가 편하고 좋으면 됐지, 남의 시선엔 의미를 두지 않는다.
때문에 집사람의 사물엔 소위 명품 브랜드가 없다.
미안한 마음에 가끔 "당신 맘에 드는거 하나 사지.." 그러면 돌아오는 대답.
"난 하면 남들 이상 최고급으로 할거야. 나중에 당신이 그렇게 해주겠지 뭐..."
남편으로서 참 편하고 고마운, 그리고, 마음 한켠 미안한 아내다.
어느 날 집사람의 휴대폰을 들여다보니 액정이 나갔다.
액정에 금이 갔는데, 집사람은 그냥 문자를 읽을만 하단다.
자세히 보니 액정 윗부분도 누렇게 색이 바랬다.
생각해보니 이 휴대폰도 4년은 된거 같다.
휴대폰을 바꿔줘야겠다고 생각하고 내가 세운 구매기준은 무조건 최신형.
기종을 결정한 후 집사람에게 보이자, 자긴 이렇게 기능 많은건 필요없단다.
늘상 하는 말로 전화 걸고받고, 문자 보내고 받으면 되지, 그 이상은 필요없단다.
그럼에도 이번만큼은 내 뜻대로 결정하여 휴대폰을 바꿨다.
요즘 한창 손담비를 내세워 광고하는 제품.
이 제품을 구입하여 기본적인 사항을 세팅해줬다.
재원이 있는 곳의 시간을 표시했고, 좋아하는 꼬맹이 사진을 위젯으로 깔았다.
그리고 네 페이지로 나뉘는 메뉴화면에도 가장 사용 빈도수가 높은 순서로 아이콘을 배치했다.
"난 이런거 보지도 않으니 필요없는데..." 하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고가의 다기능 휴대폰을 구입하여 이것저것 프로그램을 세팅해준 이유는
집사람의 사고를 바꿔보기 위해서였다.
오랜 기간의 직장생활을 마감하고 집에 있는 사람들의 문제점은 외부세계, 특히,
새로운 정보와 변화의 흐름과 단절된다는 점이다.
나는 집사람이 그리 되는게 싫다.
시대 조류를 읽지 못해 아이들과 대화가 안되고, 그러므로써 아이들에게 외면당하는 엄마가 되는게 싫다.
내가 꾸준히 뭔가 새로운걸 찾고 들여다보는 이유가, 어느 순간 아이들이
아빠와는 말이 안통한다는 소리를 듣기 싫어서다.
저 휴대폰으로는 왠만한 모든 정보를 얻을 수 있고, 활용하기에 따라 재미난 생활 도구가 된다.
사진 및 동영상 촬영과 편집은 물론, 모든 인터넷 사이트의 검색과 열람이 가능하고, 이메일의 수신 및 발신도 가능하다.
뿐만 아니라, 영화 및 공연 티켓 예매도 할 수 있고, 교통정보 탐색, 뉴스와 환율 및 주식시세 확인도 가능하다.
아울러 전 세계 지도검색뿐 아니라, 내가 있는 주변의 분야별 업종별 업소 위치까지 확인할 수 있다.
심지어는 수준별 토플 학습까지 가능하고, 전 세계의 유명 동영상도 모두 볼 수 있다.
이런 모든 것을 활용하는 한달 비용은 불과 만원정도.
사람들은 나이를 먹으며 단순한걸 원한다. 복잡하게 생각하는걸 싫어한다.
그런데, 그런 것들이 사람들을 더 나이든 것 처럼 만든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이를 먹으며 어쩔 수 없이 신체기능은 저하되겠지만, 지적기능마저 저하되고 싶지않다.
집사람도 그렇게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지극히 단순한 생각이지만, 저 휴대폰을 사준 이유이기도 하다.
집사람이 저 휴대폰의 많은 기능을 익히며 다양한 사고기능을 갖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다행인건, 그렇게도 기능에 관심이 없던 사람이 차츰 휴대폰의 기능 하나하나에 조금씩 관심을 갖는다는거.
주식조회도 하고, 모바일뱅킹도 하고, 뉴스검색도 하고...
간단한 검색은 컴퓨터를 켜는거보다 빠르고 편하다는 말,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다니며 뉴스도 보고 이것저것 검색을 하니까 재밌더라는 말,
휴대폰으로 TV도 보니까 좋더라는 말...
집사람의 이런 말들이 내가 의도한 집사람의 변화를 보는거 같아 즐겁다.
며칠 전, 집사람이 딸아이에게 하는 말.
"엄마 이제 이거 적극적으로 활용해 보려고... 그래야 아빠도 신나지 않겠니..."
후후.. 땡큐~~ 여보... ^L^.
생각지도 않던 엉뚱한 부작용도 있다.
집사람의 저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다 보니, 내 것이 무척 불편하게 느껴진다.
아이씨.. 집사람 휴대폰을 만질 때 마다 내 것도 바꾸고 싶은 욕구가 점점 강해지니 어쩌냐... 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