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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어있는 딸아이의 단축번호 1번

알 수 없는 사용자 2006. 10. 29. 07:00
휴대폰의 기능 중에 [단축번호]가 있다.
자주 사용하는 번호를 두자리 숫자로 입력하여 간단히 전화를 거는 기능.

이 단축번호 기능 때문에 발생하는 에피소드도 제법 많은거 같다.
내 번호가 상대방 휴대폰 단축키에 몇번으로 입력되어 있는가 를 친분의 척도로 삼기도 한다.

특히, 젊은 세대에게는 친한 사이일수록 단축번호의 순서에 상당히 민감한 모양이다.
젊은 남녀사이의 1번은 대개가 가장 가까운 애인의 번호를 심는다.
때문에 사귀는 이성의 휴대폰에 단축번호 1번으로 등재된다는 것은 애인으로 인정 받았다는 증거이고, 
1번에서의 누락은 사귀던 관계의 결별을 의미하며, 1번의 전화번호가 바뀌면 애인이 바뀌었다는 얘기란다.

몇년 전, 중고교 때 부터 죽마고우로 지내던 친구가 이런저런 얘기 도중 휴대폰을 사용하다 문득 묻는다.

'야..  내 번호는 니 핸드폰에 몇번에 입력되어 있냐?'
> 11번.  그거 무척 빠른 번호다.  가족빼고는 1번이니까..   니꺼에 내 번호는 몇번인데?'

'응..?  나도 니번호가 11번인데...'
> 그럼 됐네...

그러고 둘이 낄낄 웃은 적이 있다.

  
누구나 나름대로 일상에서의 룰이 있겠지만, 나 역시 휴대폰 단축번호를 부여하는 내 나름대로의 룰이 있다.

단단위는 가족이다.
1번 집사람, 2번 아들, 3번 딸, 4번 부모님 집, 5번 아버님 휴대폰, 6번 어머님 휴대폰, 7번 남동생, 8번 여동생, 9번은 집.

그리고, 10번 代는 고등학교 동문,
20번 代는 대학 동문,
30번 代는 회사 직원,
40번 代는 동호회원,
50번 代는 업무와 관련된 사람들,
60번 代는 ROTC 동기,
70번 代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개인적으로 알게된 사람들. 
80번 代는 주로 찾는 곳의 상호,
90번 代는 고속도로 상황실 등, 일상생활에 필요한 전화번호다.

그렇게 분류를 해 놓으니, 혼동이 안되고, 비교적 찾기가 편하다. 
물론, 각각의 범주내에서도 그나마 자주 연락을 하거나, 비교적 가깝게 느끼는 사람들로 채우는데,
그 범주 내에서는 순서가 빠르다고 더 가까운건 아니다.
어떤 경우에는, 자주 통화를 하는 가까운 사람의 경우 누르기 쉬운 단축번호를 부여한다. 
예를 들면, 41번 보다는 44번이 누르기가 편하다.  같은 번호를 그냥 두번 누르면 되니까.


지난 주 딸아이의 휴대폰을 바꿔주었는데, 딸애가 사용하던 휴대폰을 아들이 쓰겠다며,
전화번호를 새로 입력하다, 아들이 한마디 한다.
'이거 단축번호 1,2번은 그대로 쓰면 안되나...  지연아... 1번 2번은 아빠 엄마 아냐??'
그러자 딸애의 대답, ' 어..??  아닌데...'
 
순간, 모두의 입에서 이구동성으로 나온 말, ' 아니... 아니란 말야???'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각자의 순서를 맞추었다.

나, ' 1번 엄마, 2번 아들, 3번 딸...' 
집사람, ' 난, 1번 아빠, 2번 아들, 3번 딸...'
아들, ' 나도 1번 아빠, 2번 엄마, 3번 지연이...'  이때, 집사람이 슬쩍 딴지를 건다. ' 왜 엄마가 1번이 아냐??'
아들의 능청스런 답변, ' 에이~~ 그건 엄마가 이해를 하셔야지...'
이어서 딸, '난, 2번 아빠, 3번 엄마, 4번 오빠...'

모두의 질문, ' 그럼 1번은 누구야??'
딸, ' 비어있는데.. ....'
다시 질문, ' 왜???'
이어지는 대답, ' 언젠가의 누구를 위해서...'
모두의  ' 야~~  치사하다...' 는 질타에 딸이 마무리를 짓는다. ' 그래도 할 수 없어...'

집사람이 이번엔 아들에게 묻는다.
' 아들...  너는 그 번호 언젠까지 유지할껀데...???'

아들, ' 아.. 나야...  죽을 때 까지지...'
집사람, ' 에~ 에~ 에...  야 임마... 거짓말 하지마...  그 말을 더 못믿겠다.'
아들, ' 아~참~~  두고 보라니까...'

그런데, 나도 그 말은 믿지 못 하겠다. ^^

그나저나, 딸래미의 단축번호 1번은 언제나 채워질라나...
그리고, 언놈이 그 번호를 차지하려나...   몹시도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