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큰 행복을 안겨준 [효(孝)캠페인 광고]
1995년은 내가 직장생활을 하면서 가장 커다란 기쁨과 행복과 그리고 보람을 느꼈던 해다.
당시 삼성생명의 광고팀장으로 재직하고 있던 나는, 3월에 새로운 광고를 만들고 싶었다.
단순히 상품이나 회사를 알리기 위함이 아닌, 뭔가 사람들에게 신선하면서도 강하게 각인되는 것이 없을까...
같이 일하던 후배 서성식(현 삼성생명 광고스포츠파트장)과 머리를 맞대고 아이디어를 찾다
[가족]이라는 컨셉에 착안했다.
5월은 가정의 달. 그리고 그 중 어버이날을 생각한 것이다.
그래... 가족, 그 중에서도 [부모]를 테마로 하자.
우리가 명절마다 힘든 귀성길을 마다않고 고향을 찾는 것도 결국 부모님을 뵙기 위함이 아니던가.
모든 사람들에게 부모님은 항상 마음의 고향이고, 무한한 바다와 같은 존재가 아닌가.
누구나 자라면서 그때그때 우리 스스로는 느끼거나 알지 못하지만, 우리의 성장을 바라보며
그때마다 마음 속에 담겨지는 부모의 애뜻한 심정을 담자.
광고기획사와 함께 제작의도를 공유한 후, 처음 나온 copy초안은 그러나 내가 생각했던 느낌이 아니었다.
내용이 너무 애절하고 좀 심하게 표현하면 눈물을 유도하는 신파같은 느낌을 받았다.
예를들어 그때 초안 중에 이런 copy가 있었다.
'나이 마흔다섯... 회사에서 동기들이 승진을 했다. 그날 밤 당신은 홀로 소주잔을 기울였습니다.
다음 날 아침, 무슨 일이 있느냐는 아내의 물음에 당신은 별일 없다며 엷은 웃음을 지었습니다.'
이건 내가 의도했던 것이 아니다. 나는 자식에 대한 부모님의 무조건적인 한없는 사랑을 보여주고 싶었지,
어쩔 수 없이 사회생활을 하는 무기력하고 나약한 모습을 보이려 했던 것이 아니다.
몇번의 copy 수정작업을 거쳐 5월초 이 광고의 론칭이 나가자마자, 미처 우리가 예상치 못했던 반응이 터져 나왔다.
곳곳에서 전화와 편지가 밀려드는데, 글귀가 너무 가슴에 와 닿는다며,
이 광고를 포스터로 제작하여 보내줄 수 없느냐는 요청이었다.
군부대에서... 기동경찰대에서... 교도소와 학교에서.... 내무반과 교도실, 교실에 게시하고 싶다고 했다.
심지어는 일본의 재일 조선인학교에서 국어교재로 사용하고 싶다는 연락이 와서 가슴 벅차하기도 했다.
게중에 내가 눈시울을 붉혔던, 세 통의 기억에 남는 사연이 있다.
하나는, '부모님 돌아가신 후 어떤 이유로 남매의 정을 끊고 살고 있었는데,
이 광고를 보고 동생과 연락을 하여 같이 성묘를 가기로 했다. 남매의 정을 찾아줘서 고맙다'는 내용이며,
또 하나는, 자신이 교도소에 수감 중인 재소자라며, '그동안 어머니를 원망만 하고 살았는데,
비로소 부모의 마음을 알 수 있을거 같다. 형기를 마치면 어머님께 큰절을 올리고 그 동안의 잘못을 빌어야겠다.
마음 속의 부모님을 찾게 해줘서 고맙다' 는 내용이었다.
가장 가슴 아팠던 사연은,
자신이 젊었을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워낙 시골에서 힘들게 사셔서 아버지 사진도 하나 없었단다.
그런데, 결혼한 후, 언니네 집에 갔다가 우연히 아버지의 작은 사진을 보고는 너무 아버지가 그리워 언니 몰래
그 사진을 가져왔단다. 그 후, 하나 밖에 없는 아버지의 사진을 잃어버렸는데 어떻하냐며 안타까워하는 언니를 보면서
모른 척 시치미를 떼면서도 늘 언니에게 미안해 하고 있었단다.
한편으론 두루마기를 입은 사진 속 아버지의 사진을 보면서
양복도 한번 못 입어보고 죽은 아버지가 그렇게 불쌍하게 느껴지더라는 내용이다.
그러면서 그 분은, 뒤늦게나마 언니에게도 아버지의 사진을 돌려주고 싶다며,
우리에게 혹시 아버지의 사진을 확대해 줄 수 있느냐며 아버지의 사진을 보내왔다.
한장 밖에 없는 사진이니 잊지말고 원본을 꼭 돌려달라는 신신당부와 함께.
사진은 증명사진 정도의 아주 작은 크기였으며, 오래되어 색도 많이 바랜 낡은 사진이었다.
바로 광고사 담당을 불렀다. 컴퓨터작업으로 어느 정도까지 선명도를 유지할 수 있는지 확인한 후,
그래픽을 이용해 사진 속 아버지에게 양복을 입혀줄 것을 요구했다.
양복도 한번 못 입어보고 죽은 아버지가 그렇게 불쌍하게 느껴지더라는 딸의 애절한 바램을 실현시켜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 과정을 거쳐 A4 사이즈 정도되는 크기로 양복차림의 아버지 상반신 사진을 액자로 만들어 두개를 동생에게 보내주었다.
그 일을 계기로 3개월간 부모님 사진을 액자로 만들어주는 캠페인을 벌였다.
참으로 보람을 느꼈던 기간이다.
이 광고는 1995년 8개의 광고대상에서 수상작으로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고,
개인적으로는 각종 광고대상 시상식에서 많은 분들의 축하와 찬사를 받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나에겐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자랑스럽고 보람있는 작품이다.
그때 같이 작업을 했던 제일기획의 이창환대리(당시)에게도 다시한번 고마움을 표하고 싶다.
[효(孝) 캠페인 국내광고상 수상내역]
1995년 대한민국광고대상 金賞
1995년 중앙광고대상 大賞, 제작자賞, 카피賞
1995년 매경광고대상 大賞
1995년 한국광고대상 金賞
1995년 경향광고대상 金賞
1955년 서울광고대상 最優秀賞
1995년 국민일보 광고대상 大賞
1995년 세계일보 광고대상 大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