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야기 - 동기
아들이 고1일 때, 아내가 아들 담임을 만나고 오더니,
전교에서 10등안에 들면 서울에서 그래도 이름좀 있다는 대학엘 갈 수 있고,
반에서 10등안에 들어야 겨우 서울에 있는 대학이라도 갈 수 있다고 하더란다.
아들은 공부를 잘 하는 편은 아니었다. 반에서 15등 정도.
2~3학년에 큰 변화가 없을거라 생각하면 대학4년을 기숙사 내지 하숙생활로 보내야할거 같았다.
요즘은 혼자 내려가서 세대 구성해서 올라온다는데...
고2, 고3의 사교육비와 대학 하숙비, 그리고, 필수코스처럼 되어버린 어학연수비용 생각하니
월납이냐, 연납이냐의 차이가 있을 뿐 유학비용과 차이가 없을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유학이 능사가 아니라고 생각은 하지만, 어차피 대학졸업후 취업이 안되더라도
같은 돈 들이면서 영어는 건질 수 있다는 생각도 들고...
그렇다면 아이의 자유로운 사고라도 살려주는 것이 훨씬 낫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늘 생각이 자유로운 아이이기 때문이다.
아들에게 의사를 물어보니 본인도 거부하지 않고...
결론을 내린 후,
학교를 고르기 위해서 퇴근 후 매일같이 인터넷에 매달렸다.
내가 나름대로 세운 학교선정 기준은 이렇다.
1. 미국 동부에 위치하고
2. 전교생이 기숙사 생활을 하고 (불량환경 접촉기회를 최대한 차단)
3. 전교생이 유니폼을 입고 (복장의 차이에서 오는 위화감을 배제하고, 애가 옷에 신경쓰지 않도록)
4. 남녀공학 절대 배제 (그동네는 남녀17세 지남철이므로)
5. 한국 학생이 가장 적은 곳.
아들이 다녔던 고등학교는 이런 기준으로 유학원의 도움없이 내가 인터넷에서 직접 선택한 학교였다.
전혀 예정에도 없던 일을 번개불에 콩구어 먹듯 두달만에 마치고 나니
`이거 이렇게 보내도 되는건가?` 싶은게 마음이 심란해진다.
그러니 본인은 어떨까 생각하니 불쌍하다는 생각도 들어,
'재원아, 갑자기 결정해서 가게됐는데 겁 안나?' 물으니
'조금 겁도 나지만, 한번 도전해보고 싶은 생각도 들어.' 하고 대답을 한다.
아들은 영어를 잘하는 것도 아니었고, 사전에 치밀하게 유학준비를 했던 것도 아니었기에 걱정이 더 컸다.
'말도 안 통할텐데 답답해서 어떻하냐?' 그랬더니
'답답하면 나만 답답해? 지들도 답답한건 마찬가지지.' 그런다.
안됐다는 생각에,
' 재원아, 너 가서 해보고 못하겠다 싶으면 언제든지 아빠 엄마한테 얘기해.
네가 원하면 언제라도 들어오면 돼. 괜히 아빠 엄마에게 미안하다거나,
친구들한테 창피하다는 생각에 억지로 있을 필요 없어. 아빠 말 무슨 뜻인지 알지?' 그랬더니,
그 당시 TV프로중 [성공시대]를 유난히도 즐겨보던 녀석이 이렇게 대꾸를 한다.
'아빠 성공시대를 보면 그 사람들 다 어떤 계기가 있더라.
나한텐 지금이 그 계기가 될 수 있는거 아닌가 생각도 들어.'
떠나기 전, 아들이 매일같이 듣는 노래가 있었다.
집에만 들어오면 또래 애들 답지않게 김광석의 [이등병의 편지]만 듣곤 하길래, 괜히 제가 신숭생숭해서,
'야... 너 이 노래가 뭐가 그렇게 좋냐?'고 물으니,
노래 가사가 자기한테 맞는거 같단다. 그래서 어디가 그러냐고 물으니,
'[이제다시 시작이다. 젊은 날의 꿈이여...] 나도 새로 시작이잖아.'
그 말을 듣는 순간, 보내도 되겠구나... 하고 안심이 됐다면,
이 역시 고슴도치 사랑이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