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폴더/나, 그리고, 가족
살아 오면서 가장 좋았을때
알 수 없는 사용자
2005. 9. 29. 09:53
처음으로 키스를 하던 날.
결혼 수락 받았을 때.
중학교 중퇴한다던 딸이 고등학교 들어갔을 때.
미국에 유학중 군입대를 위해 휴학을 하고 들어와 있는, 영어도 제대로 못하던 아들녀석이
이제는 내게 '아빠도 영어학원을 제대로 다녀보시지 그래요..' 그럴때.
뭐.. 좋았던 때가 한두번이었겠나...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좋았을 때는 2001년 10월 배낭여행을 준비하던 때 였던거 같다.
배낭여행은 꼭 해보고 싶었던 일이었다.
직장생활을 그만두게된 이유중 하나가 더이상 늦으면 체력등의 이유로 시기를 놓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도 이런걸 해보는구나... 하는 설레임.
과연 어떤 것들이 내 눈앞에 펼쳐질까... 하는 기대감.
정말 내가 그 기간동안 굶지않고, 길 잃지않고, 지치지않고 다닐 수 있을까... 하는 약간의 두려움.
어떻게하면 일정기간동안 최소한의 경비로 가장 많은 곳을 돌아볼 수 있을까...
유럽열차시각표와 유럽지도를 펼쳐놓고 국가와 국가간, 도시와 도시간의 이동시간과,
숙박비를 줄이고 낮시간을 최대한 확보하기위한 야간열차 이용가능구간等을 체크하며
출발점을 어디로 잡고, 시계방향으로 도는게 좋은지, 시계반대방향으로 도는게 좋은지 등을 수도없이
시뮬레이션하는 2주간의 준비기간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그 기간이 내게 그렇게 큰 행복감을 줄 수 있었던 이유는,
학교를 졸업한 후 처음으로 나만을 위해 나를 몰입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회속에서 일을 하며 밤도 많이 세워보고 휴일도 없이 일을 해봤지만, 그건 엄밀한 의미에서
나를 위한 일이라기 보다는 내가 소속되어 있던 집단을 위한 일이었다.
한창때 집사람이 내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 당신 회사를 위해 그렇게 일 하는거 보면 난 정말 안스러워 죽겠어.. 그 열정을 당신 일을 하는데
쏟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난 사실 그런걸 보고 싶은데...'
그렇다고 내가 회사를 위해 희생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먹고사는 대가를 받았으니까.
그런의미에서 배낭여행의 준비기간은 그 누구를 위한 것이 아닌 100% 나만을 위한 작업이었다.
그렇게 나름대로는 치밀하게 준비한 일정대로 14개국 42개도시에 대한 여행이
열차시간 하나의 오차도 없이 마무리되었을 때의 스스로에게 느낀 뿌듯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여행기간 내내 나는 무척 행복했다.
비록 싸구려 유스호스텔의 빵조각으로 아침을 때우고,
점저(점심겸 저녁)를 햄버거나 스파게티로 채우고 다니면서도
TV에서만 보던 도시들을 돌아다니면서 생각지도 못했던 일을 당하기도 하고,
생김새와 피부색이 다른 사람들과 짧은 말과 큰 동작으로 의사소통을 하며,
세계사 교과서에 밑줄을 그어가며 무작정 외우기만 하던 유적들을 눈으로 확인한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다.
많은 것을 보고 우리와 비교하면서 [왜? 쟤네들은...]과 [왜? 우리는...]을 수없이 생각했다.
안타까운 것은 그런 자문자답을 활용할만한 기회와 방법이 내게 주어지지 않을거라는거.
결혼 수락 받았을 때.
중학교 중퇴한다던 딸이 고등학교 들어갔을 때.
미국에 유학중 군입대를 위해 휴학을 하고 들어와 있는, 영어도 제대로 못하던 아들녀석이
이제는 내게 '아빠도 영어학원을 제대로 다녀보시지 그래요..' 그럴때.
뭐.. 좋았던 때가 한두번이었겠나...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좋았을 때는 2001년 10월 배낭여행을 준비하던 때 였던거 같다.
배낭여행은 꼭 해보고 싶었던 일이었다.
직장생활을 그만두게된 이유중 하나가 더이상 늦으면 체력등의 이유로 시기를 놓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도 이런걸 해보는구나... 하는 설레임.
과연 어떤 것들이 내 눈앞에 펼쳐질까... 하는 기대감.
정말 내가 그 기간동안 굶지않고, 길 잃지않고, 지치지않고 다닐 수 있을까... 하는 약간의 두려움.
어떻게하면 일정기간동안 최소한의 경비로 가장 많은 곳을 돌아볼 수 있을까...
유럽열차시각표와 유럽지도를 펼쳐놓고 국가와 국가간, 도시와 도시간의 이동시간과,
숙박비를 줄이고 낮시간을 최대한 확보하기위한 야간열차 이용가능구간等을 체크하며
출발점을 어디로 잡고, 시계방향으로 도는게 좋은지, 시계반대방향으로 도는게 좋은지 등을 수도없이
시뮬레이션하는 2주간의 준비기간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그 기간이 내게 그렇게 큰 행복감을 줄 수 있었던 이유는,
학교를 졸업한 후 처음으로 나만을 위해 나를 몰입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회속에서 일을 하며 밤도 많이 세워보고 휴일도 없이 일을 해봤지만, 그건 엄밀한 의미에서
나를 위한 일이라기 보다는 내가 소속되어 있던 집단을 위한 일이었다.
한창때 집사람이 내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 당신 회사를 위해 그렇게 일 하는거 보면 난 정말 안스러워 죽겠어.. 그 열정을 당신 일을 하는데
쏟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난 사실 그런걸 보고 싶은데...'
그렇다고 내가 회사를 위해 희생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먹고사는 대가를 받았으니까.
그런의미에서 배낭여행의 준비기간은 그 누구를 위한 것이 아닌 100% 나만을 위한 작업이었다.
그렇게 나름대로는 치밀하게 준비한 일정대로 14개국 42개도시에 대한 여행이
열차시간 하나의 오차도 없이 마무리되었을 때의 스스로에게 느낀 뿌듯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여행기간 내내 나는 무척 행복했다.
비록 싸구려 유스호스텔의 빵조각으로 아침을 때우고,
점저(점심겸 저녁)를 햄버거나 스파게티로 채우고 다니면서도
TV에서만 보던 도시들을 돌아다니면서 생각지도 못했던 일을 당하기도 하고,
생김새와 피부색이 다른 사람들과 짧은 말과 큰 동작으로 의사소통을 하며,
세계사 교과서에 밑줄을 그어가며 무작정 외우기만 하던 유적들을 눈으로 확인한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다.
많은 것을 보고 우리와 비교하면서 [왜? 쟤네들은...]과 [왜? 우리는...]을 수없이 생각했다.
안타까운 것은 그런 자문자답을 활용할만한 기회와 방법이 내게 주어지지 않을거라는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