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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움을 이기는 법

알 수 없는 사용자 2005. 9. 13. 10:41
여지껏의 내 삶은 어땠을까???
비교적 순탄했을까??   힘든 때는 없었을까???

글쎄... 분명 살면서 힘든 때가 제법 있었을텐데, 두드러지게 기억나는게 없다.
많은 사람들이 흔히 겪듯이 학창시절에는 공부와 이성문제로,
직장생활을 하면서는 상사와의 갈등문제로,
그리고 예상과 어긋나는 재테크의 문제로 혼란스러웠던 적은 있었지만,
이 정도는 다들 겪는거 아닌가???

그래도 재미삼아 굳이 꼽으라면 두가지 정도를 얘기할 수는 있겠다.

직장에서 초임과장 시절,  7년동안 교육부서에서 일을 하다 인사부서로 자리를 옮기게 됐는데,
그 당시 인사부서 근무자는 타 부서와 인사교류가 많지가 않았다.
임원과 부장, 과장 및 실무자들이 거의 대부분 입사부터 인사부서 토박이들이고,
타부서에서 들어온 사람은 오래 머물지 못할 정도로 텃세가 좀 드셌다고 할까...
엄연히 내 소관분야 임에도 다른 과장의 의견을 중시하는 등,
나에 대해서도 ' 네가 뭘 알겠느냐...' 는 식이었다.

그러다보니 원래 스트레스라는걸 잘 안받는 편인 나에게도 시간이 지나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정신적 압박감이 쌓였나보다.
하루는 와이프가 
'당신 요즘 뭐 힘드는 일 있어요? 상당히 지쳐보이네... 당신 그런 모습 처음 봐...' 라고 말 할 정도로.

그러던 중 어느 날, 사소한 문제로 직속상사였던 부장과 언쟁을 부리다 그만 내가 터지고야 말았다.
그날 내가 직속상사의 책상앞에 비스듬히 서서 온 부서를 들러보며 큰 소리로 터트린 불만을
리얼하게 재구성해보면,
' 씨발 좃같이... 정말 드러워서 못해 먹겠네. 니기미... 사람이 얼빵하다고 생각되면
가르쳐서 부려먹을 생각을 하던가,  가르쳐서도 안될거 같다고 판단되면 차라리
딴데로 띄우던가 해야지, 이게 사람하나 갖다놓고 병신을 만드는거지...  내가 바지저고리야...'

그러고는, 내 부서의 주무사원에게,
'김대리..  나 먼저 퇴근할테니까,  시간되면 직원들 야근시키지 말고 집에 보내.'
그러고 사무실을 나와 버렸다.
그때 시간이 오후 4시반쯤.  사무실은 이미 완전히 빙하기가 되어 있었다.    

속상한 마음으로 혼자 맥주 한잔하고 집에 와 생각하니 한번 내질러 속은 시원한데,
당장 다음날 아침 부장 얼굴을 대하는게 아무래도 어색할거 같다.
그런 분위기는 딱 질색인지라 밤 11시가 넘어 부장의 집으로 전화를 했다.

' 부장님.. 낮에는 제가 너무 거칠었던거 같습니다.
  제가 나이만 삼십대 중반이지 생각이 아직도 애 네요...'
> 그거 때문에 전화 한거야??

' 네.. 죄송합니다.  사과드리겠습니다.
> 아~ 이 사람아...  됐어..   잠이나 자.

다음 날 아침, 난 아무일도 없었다는듯 부장에게
'일찍 나오셨습니다.' 인사를 했고,  부장은
'어... 왔어...??? '

주위사람들은 경이로운 눈초리를 두사람을 흘낏흘낏 훔쳐보고 있었다.

신기한건 그 다음부터 아무도 나를 이방인으로 안 본다는 것이다.
속좁은 상사를 안 만난 것 만으로도 나는 인복이 있었던 놈이다.

그러나, 목소리를 키우거나, 걸쭉한 육두문자가 카리스마처럼 느껴지는 사회에 사는 사람들은
참 피곤하다.

또 한번 심적고통을 느꼈던 적은,  한때 주식으로 큰 손실을 보고있을 때였다.
샐러리맨으로서는 꽤 큰 금액이었기에 마음 한구석과 머리 속이 늘 조마조마했다.
물론 오랜 시간이 지나며 모두 만회가 됐지만, 참 인내하기 쉽지않은 기간이었다.
하지만, 집사람은 내게 그런 시간의 흐름이 있었는지를 알지 못한다.

그런데, 이런 일들이 기억을 더듬어야 할 정도로 각인이 되지않은 이유는
어려운 시기를 능숙하게 넘겼기 때문이 아니라,
앞서 언급한대로 모든걸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것을 싫어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힘들었던 기억을 오래 갖고있는걸 좋아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기억들은 에피소드나 해프닝성의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다.

흔히들 어려움에 봉착하면,
지금 이 어려움을 넘기면 희망이 있을거라는 기대감으로 어려움을 극복한다고들 하는데,
나는 늘 그 반대로 생각해왔다.  


앞으로 지금보다 더 상황이 안 좋을 때도 있을 것이다...
거기에 비하면 지금은 그래도  버틸만하다...
무슨일이 닥칠지 모르는데, 이 정도를 버티지 못해서야 어떻게 더 큰 어려움을 이기겠는가...


지금은 그때를 대비한 리허설에 불과하다.
리허설은 즐기면서 해야 재미가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