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폴더/나, 그리고, 가족

쉽지않은, 자식들 정신적으로 독립시키기

알 수 없는 사용자 2005. 9. 7. 22:27

딸아이는 고3 때도 열심히 사진동호회를 쫓아 다녔다.
동호회 이름이 [보안사]라고 하는 일반 사회인 동호회였다.   [보이지않는 사진]의 약자라던가...
또래의 고등학생 동아리도 아니고,  사회인 동호회에 고등학생,
더구나 수험생이 열심히 따라다니는걸 좋아하는 수험생 부모는 흔치 않을 것이다.
한번 출사를 나가면 한밤중에 들어오기가 일쑤니, 엄마와 딸아이는 한달에 한두번씩은 충돌을 한다.

수능준비를 해야 할 고3 이 공부는 안하고 동호회가 왠말이냐...
네가 일반사회인들과 여건이 같으냐... 는  엄마의 지적에 딸애는 나름대로의 논리로 엄마와 맞선다. 

'내가 의대나 한의대를 갈 것도 아닌데,  기쓰고 공부해서 수능 490 점 이상을 받은들 그 점수가
내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   누굴 빌려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뒀다 나중에 써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내가 목표로 하는 곳에 필요한 성적만 나오면 되지..   그리고 잉여시간에 다른걸 하는게
더 의미있는게 아니냐...'  -  이것이 딸아이의 논리다.   곰곰 생각해보면 틀린 말이 전혀 아니다.

사실은 그게 정답이다.




결국 딸아이는 자기가 원하던 대로  연극과에 입학을 했다.
특히  원하던 대학이  수능과목 중 언어영역과 외국어영역만으로 입학사정을 하는 바람에
평소부터 두 과목에 유난히 강했던 딸아이는, 남들처럼 논술 준비라든지, 수능성적 발표 후
마음 졸이는 눈치작전 없이 수능시험을 본 그날 저녁으로 모든 것이 끝나버리고 말았다.
그것도 큰 효도라면 효도가 아닐 수 없다. 

집사람이 아이의 담임에게 찾아가 그동안 아이를 보살펴 준데 대한 감사인사를 드리며
'한영외고에서 **대에 간 졸업생이 없을텐데 지연이가 누를 끼쳐 죄송하다' 는 인사를 드리자,
'외고를 나오면 모두가 반드시 특정대학 이상을 가야한다고 생각하는데,  지연이가 이번에
자기 소신껏 대학을 선택해 후배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됐다고 본다.   다른 선생님들도 모두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고 밝게 받아 주신 담임선생님께 깊은 고마움을 느꼈다.      
 

딸애는 지난 여름방학 때도 줄곧 연극작업에 매달렸다.
선배가 연출을 맡은 연극에 참여하여 한달 이상을 방학도 없이 보냈는데,
그때 아이가 나갔던 [보안사] 회원들이 안성까지 찾아와 연습장면을 사진도 찍어주고,
급기야는 디자인방면에서 일하는 사람이 무료로 연극 팸플릿까지 제작해 주는 바람에
선배들로부터 능력있다고 엄청나게 칭찬을 받았다고 한다.

지난 일요일,  아이가 참여한 연극 나흘간의 마지막 공연을 보러 간 집사람은 깜짝 놀랐다.

사진동호회 [보안사] 회원이 무려 27명이나 아이의 공연을 보러 왔던 것이다.
그것도 전문 극단도 아닌 대학생들이 하는 연극에 다들 유료티켓을 구입해서...
아마도 자기들 모임에 따라다니던 유일한 여고생이 대학에 들어가 연극을 한다니 귀엽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했나 보다.

다들 사회인인 성인들이 대규모로 몰려와 최종 공연을 마친 딸아이에게,
'우리 mio 수고했다.   이리 와~~   기념사진 한장 찍어야지...'  하며 사진을 찍고는
총총히 돌아가는 모습을 보고,  집사람은 거의 감동을 먹고 말았다. 

왜 쓸데없는데 쫓아 다니냐며...  그 사람들과 네가 입장이 같으냐며,  핀잔만 줬었는데...

'어쩜... 사람들이 휴일 오후인데도 너 하나 보고 여기까지 저렇게들 찾아오니...?? 
너무 고맙다 얘...'  엄마의 감탄 섞인 놀라움에,  딸아이가 환하게 웃으며 대꾸한다.
'엄마... 내 인기가 이 정도인줄 몰랐지??  그러니까 엄마가 문제라니까... ^&^~~'

그 날...
집사람은 딸아이에게 중대선언을 했다.

'그동안 엄마 생각이 틀렸다.   네 판단이 맞았어...
앞으로 네 행동에 엄마는 일체 관여 안할테니까 지금부턴 네가 하고 싶은대로 다 해.
이제 우리 딸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