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폴더/나, 그리고, 가족
당대의 통기타 가수들을 내손으로...
알 수 없는 사용자
2005. 8. 26. 11:22
학창시절 에피소드를 얘기하라면 누구나 책을 한권씩 쓸 것이다.
더구나 나는 삶 자체가 에피소드이기 때문에 이거 잘못 건드렸다간 얘기가 또 무지 길어진다.
난 뭘 벌려놓으면 수습이 안되는게 탈이다.
대학 2학년 때, 내가 몸 담고 있던 연세적십자회 주관으로 자선음악회를 연 적이 있다.
그때 출연진 섭외를 위하여 저녁때만 되면 명동의 쉘부르, 오비스캐빈, 레드옥스等을 뒤지며
그 당시 잘나가던 김정호, 송창식, 4월과5월, 김인순, 김세환, 어니언스, 세부엉等을
만나러 다닌 기억이 있다.
게중 누구는 출연료가 적다고 거절을 한 반면,
송창식은 당시 윤형주가 진행하던 방속국 심야 음악프로인 [0시의 다이얼]에 게스트로 나와,
' 연세대학교 적십자회에서 자선음악회를 개최합니다. 저도 참여할 예정인데
애청자 여러분들도 많이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라는 멘트를 날려 나를 감동먹게 했다.
그때 뜻하지않은 난관에 봉착한게, 학교측에서 대강당 사용을 불허한 것이다.
이유는 학생들 코 묻은 돈 빨아먹는 행사에 학교의 대강당을 빌려줄 수 없다나...
출연진 섭외에 포스터 제작까지 다 마친 상황에서 참으로 환장할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다행히 수습이 잘 되어 성황리에 행사를 마치긴 했지만.
그 당시 당대의 최고 스타들을 직접 만나 내 손으로 출연진을 구성했다는게
얼마나 뿌듯했는지 모른다.
지금같이 매니저 라든지 기획사 시스템이 없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그냥 음악이 좋아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본인들의 마음 내키는 곳에서 노래를 부를 뿐,
그들에게 비즈니스라는 개념은 없었다.
모든 것이 어설펐던.. 그러기에 그만큼 순박했던 시절이었다.
가수들은 아직도 있고,
요즘 모 방속국에서 배철수氏가 7080 이란 70년대 가요프로도 진행하고 있던데,
쉘부르, OB's cabin 은 어찌됐는지...
그러고보니 명동 나가본지도 꽤 오래다.
더구나 나는 삶 자체가 에피소드이기 때문에 이거 잘못 건드렸다간 얘기가 또 무지 길어진다.
난 뭘 벌려놓으면 수습이 안되는게 탈이다.
대학 2학년 때, 내가 몸 담고 있던 연세적십자회 주관으로 자선음악회를 연 적이 있다.
그때 출연진 섭외를 위하여 저녁때만 되면 명동의 쉘부르, 오비스캐빈, 레드옥스等을 뒤지며
그 당시 잘나가던 김정호, 송창식, 4월과5월, 김인순, 김세환, 어니언스, 세부엉等을
만나러 다닌 기억이 있다.
게중 누구는 출연료가 적다고 거절을 한 반면,
송창식은 당시 윤형주가 진행하던 방속국 심야 음악프로인 [0시의 다이얼]에 게스트로 나와,
' 연세대학교 적십자회에서 자선음악회를 개최합니다. 저도 참여할 예정인데
애청자 여러분들도 많이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라는 멘트를 날려 나를 감동먹게 했다.
그때 뜻하지않은 난관에 봉착한게, 학교측에서 대강당 사용을 불허한 것이다.
이유는 학생들 코 묻은 돈 빨아먹는 행사에 학교의 대강당을 빌려줄 수 없다나...
출연진 섭외에 포스터 제작까지 다 마친 상황에서 참으로 환장할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다행히 수습이 잘 되어 성황리에 행사를 마치긴 했지만.
그 당시 당대의 최고 스타들을 직접 만나 내 손으로 출연진을 구성했다는게
얼마나 뿌듯했는지 모른다.
지금같이 매니저 라든지 기획사 시스템이 없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그냥 음악이 좋아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본인들의 마음 내키는 곳에서 노래를 부를 뿐,
그들에게 비즈니스라는 개념은 없었다.
모든 것이 어설펐던.. 그러기에 그만큼 순박했던 시절이었다.
가수들은 아직도 있고,
요즘 모 방속국에서 배철수氏가 7080 이란 70년대 가요프로도 진행하고 있던데,
쉘부르, OB's cabin 은 어찌됐는지...
그러고보니 명동 나가본지도 꽤 오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