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폴더/나, 그리고, 가족
가족이야기
알 수 없는 사용자
2005. 8. 25. 02:20
집사람과 아들 딸이, 나와 가족을 이루고 있다.
집사람은 중학교 교사다.
큰놈인 아들은 고1을 마치고 미국으로 건너가 Military Academy를 거쳐 대학 2학년을 마치고,
현재 교육의 의무에 이어 두번째 의무인 병역을 위해 대기 중이다.
딸아이는 연극 연출을 전공하는 대학 새내기다.
아들은 너무 끼가 없어서 걱정, 딸은 너무 끼가 많아 걱정이다.
대학을 졸업한 후 군에 간 나에게, 복학생도 아닌데 어떻게 써클(요즘 용어로 동아리) 5년 후배와
결혼을 할 수 있었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많았다.
집사람과의 만남은 내가 졸업한 다음해인 1979년 4월에 휴가를 나와, 친구들도 만날겸
모교를 방문하여 당시가 학기초라 신입회원들이 모여있던 써클룸에 들른 것이 계기가 됐는데,
아무도... 심지어는 우리들도 예상치 않았던 육군중위와 단발머리 신입생의 그 다음 이야기는
소설이다.
우연이 인연이 되기에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전형적인 군인이신 나의 아버님은 매우 엄한 분이시다.
고지식할 정도로 매사가 원칙적이신 아버님에 비해 어머니는 합리적이시다.
학창시절 우리집에 자주 드나들었던 친구들도 아버님을 매우 어렵게 생각했다.
지금도 신문지 사이에 끼워오는 광고전단지를 잘라 메모지로 사용하시는 근검절약정신 때문에,
부유하진 않았지만 그리 궁핍한 가계경제가 아니었음에도 나는 학창시절 친구들에게 짠돌이 티를
내고 다녀야 했다.
오랜 공직생활을 하시며 어느 정도의 대우와 예우를 받고 생활하시던 아버님의 은퇴후 변신은
우리가족 모두에게 충격과 경악이었다.
그렇게 꼬장꼬장 하시고 집안 일에는 전혀 관심도 없으시던 양반이 은퇴를 하시고 나자
온 집안 일을 혼자 다 하시는거다.
여든이 넘으신 요즘도 집안청소, 밥 짓는 일, 설거지, 세탁기 돌리는 일이 모두 아버님의 자발적인
몫이다.
그러한,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변신에 대해 본인은 이렇게 답하신다.
' 네 어머니가 내 공직생활 40년동안 내 뒷바라지를 다 해줬으니, 이제부터는 내가 네 어어니
뒷바라지를 해야 하는게 당연한 몫 아니냐...'
그 말을 듣고 제일 입이 벌어진 사람은... 어머니가 아닌, 집사람이었다.
지난 월요일이 생신이셨던 아버님은 주위 사람들에게 부담 주기 싫으시다며,
어머님과 같이 두분이 일요일 유성온천으로 잠시 마실을 가셨다.
내가 고속도로 전용차선 위반으로 딱지를 뗀 원인제공이 되던 날이다.
집사람은 중학교 교사다.
큰놈인 아들은 고1을 마치고 미국으로 건너가 Military Academy를 거쳐 대학 2학년을 마치고,
현재 교육의 의무에 이어 두번째 의무인 병역을 위해 대기 중이다.
딸아이는 연극 연출을 전공하는 대학 새내기다.
아들은 너무 끼가 없어서 걱정, 딸은 너무 끼가 많아 걱정이다.
대학을 졸업한 후 군에 간 나에게, 복학생도 아닌데 어떻게 써클(요즘 용어로 동아리) 5년 후배와
결혼을 할 수 있었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많았다.
집사람과의 만남은 내가 졸업한 다음해인 1979년 4월에 휴가를 나와, 친구들도 만날겸
모교를 방문하여 당시가 학기초라 신입회원들이 모여있던 써클룸에 들른 것이 계기가 됐는데,
아무도... 심지어는 우리들도 예상치 않았던 육군중위와 단발머리 신입생의 그 다음 이야기는
소설이다.
우연이 인연이 되기에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전형적인 군인이신 나의 아버님은 매우 엄한 분이시다.
고지식할 정도로 매사가 원칙적이신 아버님에 비해 어머니는 합리적이시다.
학창시절 우리집에 자주 드나들었던 친구들도 아버님을 매우 어렵게 생각했다.
지금도 신문지 사이에 끼워오는 광고전단지를 잘라 메모지로 사용하시는 근검절약정신 때문에,
부유하진 않았지만 그리 궁핍한 가계경제가 아니었음에도 나는 학창시절 친구들에게 짠돌이 티를
내고 다녀야 했다.
오랜 공직생활을 하시며 어느 정도의 대우와 예우를 받고 생활하시던 아버님의 은퇴후 변신은
우리가족 모두에게 충격과 경악이었다.
그렇게 꼬장꼬장 하시고 집안 일에는 전혀 관심도 없으시던 양반이 은퇴를 하시고 나자
온 집안 일을 혼자 다 하시는거다.
여든이 넘으신 요즘도 집안청소, 밥 짓는 일, 설거지, 세탁기 돌리는 일이 모두 아버님의 자발적인
몫이다.
그러한,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변신에 대해 본인은 이렇게 답하신다.
' 네 어머니가 내 공직생활 40년동안 내 뒷바라지를 다 해줬으니, 이제부터는 내가 네 어어니
뒷바라지를 해야 하는게 당연한 몫 아니냐...'
그 말을 듣고 제일 입이 벌어진 사람은... 어머니가 아닌, 집사람이었다.
지난 월요일이 생신이셨던 아버님은 주위 사람들에게 부담 주기 싫으시다며,
어머님과 같이 두분이 일요일 유성온천으로 잠시 마실을 가셨다.
내가 고속도로 전용차선 위반으로 딱지를 뗀 원인제공이 되던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