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가족여행 - 약간은 우울한 출발
[2008. 8. 14. 목요일]
모처럼 네식구가 같이 길을 나서게되니 마음이 들뜬다.
재원이가 미국비자인터뷰가 있어 먼저 집을 나섰고, 꼬맹이를 백점장에게 맡기기 위해
홍대앞 백점장의 가게에서 만나기로 했다.
꼬맹이는 뭔가 분위기가 심상치않음을 느꼈는지 연신 신음소리를 내며 잔뜩 움추린 채 한여름 임에도 덜덜 떨고있다.
이런걸 동물적감각이라고 하는건지...
비자인터뷰를 마치고 온 재원이의 표정이 어둡다. 비자가 안나온 것이다.
미국에서 들어오기 직전 그곳 아이들과 시비가 붙어 폭행혐의로 경찰에 연행된 적이 있었는데 그것이 빌미가 된 것이다.
당시 재판까지 받으며 가장 우려했던 점이 바로 이런 것이었다.
비자가 거부된다거나 행여라도 입국이 거부되는 불상사가 생기는건 아닌지 하는.
그때 재판을 위임했던 변호사로부터 그런 일은 없을거라는 확인을 그렇게 받았었는데...
비자인터뷰를 담당했던 직원의 말로는, 경미한 사항이라 비자가 안나온다던지 하는 일은 없을거란다.
단지 본국에 사건내용에 대해 서류상으로 조회하는 절차가 필요한데 기간이 약 두달정도 소요된다며,
조회가 되는대로 연락을 주겠다고 했단다. 하지만, 재원이가 받은 심적충격은 컸다.
오랜만의 가족여행은 이렇게 썩 좋지않은 분위기로 출발했다.
하지만, 달리 생각하면 아주 적절하고 좋은 시점에 여행을 가게된거 같다.
집에 있었다면 심란했을 재원이가 기분전환을 할 수 있는 절묘한 타이밍이 된거 아닌가.
이미 벌어진 일에 대해서는 모든걸 편하게 생각하자.
여권이 묶일거라 생각하고 일본일정을 취소한게 아쉽기는 하지만...
서해안고속도로를 타고 내려가다 들른 서해대교 안의 행담도 휴게소.
대학입학후 3년동안 하루의 쉼도 없이 작업에 몰두하느라 여행 한번 못다녔던 지연이에게는
엄마와 함께 사먹는 휴게소의 떡볶이마저도 재밌다. 재원이는 여전히 심란한지 혼자 차안에서 눈을 붙이고 있다.
이동경로로만 보면 첫 숙박지인 대산에 들러 짐을 풀고 간월도로 가는게 맞지만, 바로 간월도로 방향을 틀었다.
마음이 편치않을 재원이가 바다라도 보면서 기분전환을 했으면 싶다.
1년에 두번 꼴은 이 앞을 지나면서도 매번 멀리서 보기만했던 해미읍성.
해미읍성은 지금의 군사적편제에 비유한다면 군단사령부라고 보면 적절할거 같다.
그만큼 비중이 컸던 곳인데, 이순신장군이 군관시절 이곳에 근무했다고 한다.
고맙게도 입장료를 받지않는 성문에 들어서니 커다란 소나무가 세월의 무게감을 느끼게 해주는데,
주변의 고개숙인 해바라기를 보며 뜬금없이 떠오른 단어는 [조족지혈].
읍성 안에는 기와로 된 옛 관청이 보존되어 있고, 백성들의 주거시설인 초가집을 재현해 놓았는데,
아이들에게는 현장교육의 장이 될 수 있겠다.
문이 너덜거리는 모습은 보기가 안스럽다. 이런건 보수를 해도 되지않을까 싶은데...
백문이불여일견.
정말 말로 설명하는 것 보다 직접 보는 것이 훨씬 효과적인게 많다.
부모 역시 제대로 알지 못한다면 더더욱 그렇다.
이 중 몇몇은 나도 모르는 용어다. 그러니, 이런데서 보지않으면 설명이 안되는 것들이다.
옛 선조들은 이런 자세로 글을 읽고 공부를 했다면 요즘 아이들은 뭐라 말할까?
'골치아픈 수학문제 안풀어서 좋았겠다...' 그럴까??
방안의 세간살이는 저게 다 라면 또 무슨 생각을 할까...
선풍기도 없이 무더운 여름을 저런 좁은 공간에서 보낸 선조들.
없으면 없는대로. 그게 삶의 공식인 모양이다.
멀리 볼게 뭐있나. 불과 20년도 안된 과거(?)엔 휴대폰 없이도 잘 살았구만.
그러고보니 요즘 방 인테리어의 추세인 북박이장의 원조는 저 다락이잖아. ^^
해미읍성의 종교적으로도 의미가 있는 곳이다.
조선시대에 국가에서 탄압하던 천주교가 강세를 보인 지역으로,
많은 천주교신도들이 이곳에서 박해를 받고 순교한 곳이기도 하다.
선비의 책상 옆 십자가가 그런 역사를 상징하고 있다.
옛 것을 지금 것에 대비해보는 것도 재미가 있다.
오른쪽에 있는 공간이 결국 다용도실이라 할 수 있겠지.
차이가 있다면, 세탁기와 빨래건조대 대신 절구와 메주가 있다는 것.
그리고 요즘은 믹서기가 주방에 있지만, 당시의 맷돌은 다용도실에 있다.
거... 되게 안들어가네...
재원이의 기분전환을 위해 강요하다시피 해보라고 권했는데, 자세를 보니 아직은 적극성이 보이지 않는다.
사진을 이렇게 붙여놓으니까 재원이가 애들 같네... ㅋㅋㅋ...
근데, 이 놀이 [투호]의 정확한 이름을 요즘 젊은 부모들은 얼마나 알까?
근처를 지나게되면 잠깐 들려봐도 좋을 해미읍성이다.
그리 오래 걸리지 않으면서도 아이들에게는 볼거리가 있고, 잠시 숨을 고르게되는 정취도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간월도로 가면 낙조를 볼 수 있는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