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다니기/국내여행

그 곳엘 다녀왔다 1 - 만나보고 싶은 대왕상회 식구들

알 수 없는 사용자 2007. 10. 1. 11:31
얼마 전부터 그 곳엘 가고싶었다.
가끔 문득문득 그 곳이 생각나곤 했지만, 최근 갑자기 가보고싶은 욕구가 솟아올랐다.

지난 주말 집사람과 함께 그 곳엘 다녀왔다.
내 20대 젊음의 기백을 가장 강하게 표출했던 곳.
내가 군생활을 했던 화천.

춘천을 지나면서 점점 가슴이 두근거린다.
그때는 춘천에서부터 비포장도로였던 곳이 깔끔하게 포장이 되어있다.
사창리와 도로가 분리되는 지점에 이르니 검문소가 보인다.
그당시 화천에서 춘천방면으로 나가는 군인들은 여지없이 이곳에서 검문을 받는다.
이름하여 신포리 검문소 - 이 곳을 지나던 수많은 기억과 함께 정겨운 감정이 밀려온다.
많은 보수가 있었겠지만, 그 모습은 예전과 똑같다. 

문득, 검문을 하던 헌병병사가 내 얼굴을 들여다보더니,
'혹시... 경동 나오시지않았습니까?  저 경동 32기입니다.' 하던 기억이 나면서 웃음이 나온다.


화천에서 가장 먼저 가보고싶은 곳이 있다.
외출이나 외박을 나오면 늘 들리던 당시 가게와 여관을 함께 하던 곳이다.

이 집은 부부와 2남1녀가 가족이었다.
얼굴이 길쭉하셨던 아저씨, 동글동글하면서 아주 예쁜 얼굴이셨던 아주머니,
그리고 당시 스물살쯤 됐던 아주 이지적 미인인 큰 딸과 아래도 남동생 둘.
모두 이름도 기억이 나지만 안 밝히는게 좋을거 같다.

두분께서는 우리에게 너무 잘해주셔서, 특히 아주머니께는 '어머니'라고 부를 정도였고,
아이들도 '이중위 아저씨' 라며 잘 따라주어 가끔은 학습지도까지 해줄 정도로 가족처럼 친밀하게 지냈다.
먹고싶은게 있으면 그냥 냉장고에서 직접 꺼내 먹고, 장부에다 직접 기재하고 나중에 월급날 알아서 지불할 정도였으니...

사실 화천엘 가고싶은던 큰 이유도 그 분들이 보고싶고 궁금했기 때문이다.
제대한지 27년이 지났으니, 이제 그 분들 연세도 70은 넘으셨을텐데...

아직 그 곳에 계시리라는 기대는 못하지만, 찾아갈 순 있을까...
화천으로 접어드는 다리를 건너니 오른쪽의 시외버스터미널이 여전하다.
조금 더 가면 왼쪽에 군인극장이 있었는데, 그건 보이지 않는다.

29년 전인 1978년 6월말 
춘천에서 군용트럭을 타고 처음 이 길에 접어드니 읍내에 펄럭이던 프래카드가 기억에 생생하다. 
[ ROTC 16기 신임장교들의 부임을 환영합니다.  - 화천군 상인 일동 ] 

그 때 그 문구를 보고 우리끼리 '우리가 봉이다 이거지... 월급 다 풀어놓고가라는 얘기네...' 라며
웃었던 기억이 나지만, 그 추억도 정겹게 남아있다.   요새도 이런 플래카드가 있는지도 궁금하고.



한가롭던 이 길에 이제 차들이 즐비하다.  빠리바게트도 보이고, PC방도 보인다.
참 신기한건 자동차가 많아지고, 새로운 브랜드가 많아졌음에도, 길 양옆에는 여전히 2층건물만 있다.
29년 전, 2층에 있던 [샘다방] - 정말 신기하게도 바로 그 위치에 지금은 [호수 카페]의 간판이 보인다.
제대 후 27년이라는 세월의 침식작용끝에 [샘]이 [호수]로 업그레이드 되었구나...

그리고 내가 설레임을 안고 찾은 곳.



이렇지가 않았는데...  이런 건물은 아니었다. 단층 한옥이었을 뿐이다.
건물에 다가가 입구에 있던  중년부인에게 물었다.

- 저... 혹시.. 여기가 예전 대왕상회하고 대왕여관이 있던 자리 맞습니까?
> 맞는데요. (이 소리만으로도 귀가 번쩍 뜨이고 반갑다.)

- 그럼 혹시, 그때 주인되시는 분이 아직 계신가요?
> 아뇨, 그 사람들이 이 건물을 짓다 돈이 모자라 16년 전에 내가 경매로 샀어요.

이 말을 들으니 가슴이 뜨끔해진다.  그렇다면, 혹시 경제적으로 잘못된 것인가???  

- 그럼 그분들은 지금 어디 사시는지 모르세요?
> 부촌리 사람들인데, 어딘진 모르지만, 편하게 잘 지낸다고는 들은거 같아요.

편안히 계시다니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에 조금은 마음이 편해진다.
생각같아서는 좀더 알아보고 싶지만, 주말이라 어디 알아볼 곳도 없다.

예전에는 상회 앞에서 풍산리와 신읍리 들어가는 버스가 있었지만,
하루에 3회씩 운행을 해 대부분 공터였었고, 버스가 있어도 한대 뿐이었는데, 지금은 꽉 차있다.



지금은 대형(?) 정육점인 이 자리에는 정육점과 붙어있는 작은 고기집이 하나 있었다.
그때만해도 고기를 거의 먹지않던 나 였지만, 그래도 한달에 한번 월급을 받은 다음에는
혼자서라도 그 식당을 찾아 고기를 먹었다.  오로지 체력관리를 해야한다는 생각에...

지금 생각하니, 한달에 한번 먹는 고기가 체력에 얼마나 도움이 될런지도 의문이지만,
평소 집에서도 고기를 안 먹던 녀석이, 집 떠나있다고 나름대로 스스로를 챙긴 것이다.

스물다섯 청년의 우스꽝스런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