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다니기/2001 유럽배낭여행

배낭여행의 또다른 즐거움 - 만남

알 수 없는 사용자 2007. 11. 17. 01:20
보는 것, 그리고 느끼는 것이 배낭여행이 주는 즐거움이라고 생각했던 나에게
여행은 또다른 것을 주고 있다.

만남.

한국인은 물론 외국인까지 이미 많은 사람들을 만났지만, 
이곳에서 자유로운 만남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끔 된다.

숙소에서 만났던 사람들을 오늘도 이곳저곳에서 자주 만나게 되는데,
그때마다 서로 인사를 주고받으며 반가워한다.  

여러 곳을 다니다보니 2~3명씩 같이 다니는 사람들을 자주 본다.
원래 일행이냐고 물으면 거의 대부분이 아니란다.
각자 따로 여행을 즐기다 우연히 만나서 목적지와 일정이 비슷하면 같이 다니는 경우가 더 많다.

남녀 구분없이 방향이 맞으면 같이 다니며 식사도 같이 해먹는 모습이 보기가 좋다.
우리 젊었을 때와 비교하면 부럽기까지 하다.
우리가 젊었을 때는 여자 여행객들에게 말을 건네는 행동은 (요즘 용어로) 일종의 작업처럼 여겨졌는데,
요즘 젊은이들에겐 지극히 자연스러운 행동이다.

아침식사를 할때 옆자리에서 식사를 하는 청년 두명과 아가씨 한명이 아주 친숙해보여 물어보니
원래는 다 따로 여행을 즐기다가 체코에서 만나 같이 다닌단다.
숙소도 늘 dormitory를 쓰고, 한 방을 같이 사용하기도 한단다.
하지만 그런 모습에서 전혀 어색함이 없고, 또 이상하게 보이지도 않는다.



우측의 빨간 파카를 입은 청년은 영국 유학생이다.
처음 만났음에도 팔짱을 낀 모습이 부녀처럼 자연스러운데, 
성격들이 그렇게 밝고 좋을 수가 없고, 예의들도 참 바른 즐거운 젊은이들이다.


서울에서 만나면 서로 관심도 없을 사람들이, 낯선 이국에서 만났다는 이유만으로
함께 다니며 서로 방을 같이 사용하고 식사도 같이 하며 차 한잔을 놓고 정담을 나눈다.
며칠씩 같이 다니는 사람들 끼리야 서로 통성명을 하겠지만,
1박정도 하면서 만나는 사람들끼리는 서로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른다.

어제 밤 파티에서 만나 즐겁게 이야기를 나눈 여행자들. 
오늘 또 장소를 바꿔가며 몇번을 만나고 헤어지면서,
만나면 반갑게 인사를 하고, 헤어질 땐 서로 '좋은 여행하라, 건강하라.' 고 덕담을 나누지만,
정말 이름도 모르고 성도 모르는 일명 묻지마 만남이다.


궁금한건,
이렇게 여행을 다니는 사람들(대부분이 젊은이들이지만)은 무엇을 하는데 이런 시간들이 나는지...
하기사, 저 젊은 친구들이 우리를 보면 같은 (아니 어쩌면 더 이상하게) 생각을 할 수도 있겠다.
우리야 휴학을 하고 왔지만, 저 아저씨들은 뭐하는 사람들일까??

또 하나 놀라운건 혼자 나온 젊은 아가씨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점이다.
개중에는 영어를 전혀 못하는 아가씨들도 많던데,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생각보다 도전적이고 적극적인 젊음을 추구하는 여성들이 많다는걸 느끼는게 기분이 좋다.

특히 놀란 것은, 배낭여행에서 만난 젊은이들이 서울에서 보던 일부 이상한 젊은이들에 비해
대단히 건전하고 사교적이고 예의바르다는 점이다.
많은 나이 차가 있음에도 부담없이 상당히 친근하게 대해주고,  과일을 깎아 건네주는 등,
처음보는 누군지도 모르는 우리에게도 기대 이상으로 예의바른 언행을 한다.

한창 말이 많은 [압구정동 오렌지족]이라고 일컬어지는 흔들리는 젊음에 실망을 많이 하던 터라,
지구 반대편에서 커다란 배낭을 메고 자신이 세운 목표를 향해 이리저리 바쁘게 움직이는 
싱싱한 젊은이들에게서 싱그러움을 느끼며, 그들의 모습이 그렇게 사랑스럽고 미더울 수가 없다.


일탈에서 벗어난 자유, 낯선 환경이 주는 호기심과 기대감으로 인해
밖에 나오면 자칫 나태해질 수 도 있고, 생활이 흐트러짐을 우려할 수도 있겠지만
내가 보고 만난 젊은이들은 매우 건실한 여행을 즐기고 있었다.

이런 젊은 친구들이 보다 많은 것을 보면서 뭔가 느끼고,
그 느낌이 본인 및 사회를 위해 긍정적으로 기여할 수 있으면 좋겠다.

한국의 젊은이들, 특히 젊은 여성들 Fighting !!!





융프라우 요흐 정상에서 만난 이 젊은 아가씨.
일회용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거나 복장이 일반 배낭여행객 같지가 않아 물어보니 재경부 소속 공무원이란다.
제네바 국제회의 참석차 왔다가 회의 종료후 주말을 이용해 잠깐 들렀다길래 고위직의 수행비서인줄 알았다.
이야기를 나눠보니 행정고시 출신의 재경부 사무관.

일회용 카메라 성능이 안좋은거 같아 내 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여행 후 이메일로 보내주니 회신이 왔다.
'이상범 선생님...'   
보낸 사람의 품격이 전해질 정도로 정중하게 보내준, 사진에 대한 감사의 회신.

오래 기억하고 싶을 정도로  유능하고 사려깊은, 기분좋은 젊음과의 만남이었다.

ㅇㅅㅎ 사무관님 (지금쯤은 결혼도 하고 승진도 했겠지만),
임의로 올린 사진이 혹시라도 누가 되지 않을까 염려됩니다만, 나쁜 의도가 아님을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일부러 사진도 작게, 그것도 선글라스 착용한 사진을 포커스 아웃으로 올렸음을 참작하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