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다니기/2001 유럽배낭여행

여행객의 동경 Swiss 에 들어서다.

알 수 없는 사용자 2007. 11. 5. 03:03
[ 2001. 12. 6  Thur ]


우리가 탄 열차는 스위스 승무원이 탔는데 무척 친절하다.
어제 밤 열차가 출발한 후 들어와서는, 우리 칸에는 두사람만 있으니 문 잠그고 자라고 일러준다.
6인용 쿠셋에 초이와 둘이서 오붓하게 왔다.  하긴.. 오붓해봤자 중년의 남자 둘이서 밤새 할 일이 뭐가 있겠는가.
어제 Venezia 역에서 산 와인으로 객고를 달래고는 늘어지게 잘 잤다.


쿠셋에서 일어나 맞는 Swiss의 아침은 즐겁다. 
복도로 나와 차창에서 와닿은 공기가 다르다. 산악지형임을 쉽게 느낄 수 있다.

세면을 하고나니 승무원이 아침식사를 객실까지 직접 서빙해준다.
빵 두개, 쥬스, 초콜릿, 그리고 모닝커피 까지.   오우~~  나름대로 낭만적이네.
역시 산간마을 인심이 좋은가 보다.
 
지금 열차의 차창 밖으로는 이따금씩 그림같은 모습들이 시야를 스쳐간다.  이래서 Swiss인가 보다.
커피를 손에 받쳐든 채 그런 풍경들을 바라보는 내 모습이 문득 무척 자유스럽게 느껴진다.
회사 그만두고 이렇게 떠나오길 정말 잘했지...   근데, 혼자 집에 있을 집사람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든다.




Bern 역 광장.

Bern 에서 Interlaken 으로 가는 기차를 갈아타기 까지 두시간 가까이 시간이 남아 베른역 주변을 돌아봤지만,
흔히 볼 수 있는 상점 뿐 별로 별게 없다.  게다가 아침이라서인지 대부분 문을 열지도 않았다. 

벽에 걸린 눈사람이 스위스가 萬年雪의 나라 임을 알려주는거 같은데,
도심의 허공에 얽혀있는 전철의 동력케이블을 보니 6~70년대 서울의 시가지 모습이 생각난다. 
소규모 도시라서 가능한거겠지.


베른에서 인터라켄으로 가는 기차의 좌측 창가에 비춰지는 풍경이 너무 아름답다.



넓은 호수를 끼고 마주하는, 그림같이 깜찍한 집들과 수려한 곡선의 산 밑에 옹기종기 자리잡은 마을을 바라보며
'이사람들은 이렇게 아름답고 평온한 곳에 살아 참 좋겠다.' 는 감상적인 생각이 들다가도,
'저런데 사는 사람들은 무엇으로 생계를 유지하며, 생필품은 어떻게 조달하며 살아가나?' 하는 현실적 궁금증이
동시에 발동하는걸 보면, 나도 로멘티스트 체질은 아무래도 아닌 모양이다. 


Interlaken Ost 역에서 내려 대합실에 들어가니, @>@...    여기가 한국인가 싶다.
대합실에 예닐곱명이 있는데, 그중 한사람만 빼고는 모두가 한국인이라면 믿을까...

서로 몇마디 정보를 나눠보니, 번지점프도, 호수유람선도 모두 close 됐단다.
이런...  다른건 몰라도 번지점프는 꼭 한번 하고 가리라 단단히 맘을 먹고 왔는데 아쉽다...
처음부터 번지점프는 안한다고 선언한 초이는 신이 났다. 

융프라우도 일기가 안좋아 올라가도 볼 수가 없단다.
할 수 없이 융프라우로 올라가는 초입격인 라우터부르넨으로 올라와 숙소를 잡기로 했다.


이곳 호스텔에서는 각자 취사가 가능하다고 하여 역 맞은 편에 있는 마트에서 장을 보는데,
진열대를 둘러보던 초이가 통닭을 발견하고는 묻는다.

초이 : 형~~  통닭 먹을래?
나    : 통닭??  별론데...
초이 : 조금만 먹지...
나    : 싫다니까... 왜?
초이 : 반 마리는 좀 적을거 같고, 한 마리는 좀 많을거 같은데..  정말 안 먹을꺼야??
나    : 안 먹는다니까..
초이 : 아이씨~~  알았어..  나중에 달라는 소리 하지마 !!

코너를 돌다보니 눈이 뻔쩍 뜨이는 곳이 있다.  어~~ 여기에 라면이 있네...

나    : 초이~~~  여기 라면도 있다 야...  너 라면 안 먹을래?  먹을거면 세 개 사고.
초이 : 라면 안 먹어.  산에 올라가려면 영양보충 해야지. 라면 먹고 되겠어..
나    : 야... 산은 열차가 올라가지, 니가 올라가냐?  먹자...  혼자 두 개는 좀 많은거 같은데..
초이 : 난 통닭 먹는다니까..!!
나    : 알았어..  너도 나중에 달라기만 해봐...

이렇게해서 초이는 통닭 한 마리, 나는 라면 두 개와 스낵 한봉지를 사서 숙소로 들어갔는데,
잠시 후 둘이는 서로의 식탁을 바라보며 애틋한 시선만 보내야 했다. (이 이야기는 잠시 뒤에) 




Valley Hostel 로 걸어가며 보이는 풍광.

이태리에서는 보이는게 모두 유적으로, 인간의 무한한 창조성에 경탄하였는데,
이제부터는 눈 앞에 쉼없이 펼쳐지는 자연의 위대함에 감탄할 차례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