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다니기/2001 유럽배낭여행

카프리에서 만난 부러운 젊음들

알 수 없는 사용자 2007. 6. 28. 05:25


Capri 섬은 참 매력적이다.
산 중턱에 형성된 Anacapri 와 부두에 형성된 타운이 마치 별개의 마을처럼 느껴진다.

어제 폼페이에서 돌아오는 길에 기차역에서 만난, 나를 일본인으로 알았다는 아가씨는
우리가 오늘 카프리섬에 간다니까,  두시간 도니까 볼게 없다며 을릉도 보다 못하다고 했는데, 
그 아가씨는 어디서 뭘 봤길래 그럴까?  우린 5시간도 부족할 정도로 구경 잘 했는데...
카프리섬에 저녁에 들어와 숙소를 못잡아 고생했다더니만, 자기 말 마따나 방 잡다가 짜증나니
아침에 지도도 없이 대충 돌아보고 온 모양이다.

캐나다에서 왔다는 최건이 그 말을 듣더니, '을릉도가 어때요?' 라고 묻길래,
'아주 훌륭하고 멋있는 섬.' 이라고 하니,
'다행이네요..  을릉도 보다 못하다길래 형편없는줄 알았어요.' 그런다.


섬 아랫마을에서 아나카프리로 올라가는 버스 안에서 한국아가씨 두명을 만나, 
돌아올 땐 보트 투어를 함께한 청년까지 일행이 다섯이 됐다.
이 친구들이 계속해서 병아리가 어미닭 쫒아다니듯 세명이 우리 뒤만 따라다닌다.
배도 20000 리라 주고 타고 왔다며, 8000 리라로 가는 배편을 알려주니 좋아한다.

돌아오는 배 안에서 이야기를 해보니, 죄다 직장 그만두고 나온 사람들이다.



빨간 옷의 아가씨는 2년, 자주색 아가씨는 8개월 회사를 다니다가 여행자금을 마련하여 나왔단다.
초이 옆의 인상좋은 청년이 광고회사 3년을 접고 50일 일정으로 이태리와 터키를 돌아본다는 청년.

아가씨들은 서로 여행 중에 만났다는데, 영어를 잘 못하면서도 혼자서 나설 생각들을 하다니...  다들 용감하다.   
두 사람은 여행 중에 만나고 헤어지고를 세번이나 했다니, 그것도 서로에게 대단한 인연이 아닌가.
나중에 서울로 돌아가면 언니 동생으로 지내기로 했단다.
둘이서는 서로가 다음 행선지에 대한  기경험자의 정보를 얻기 바쁘다. 
이런 것이 배낭여행의 재미가 아니겠는가...

초이가 한마디 한다.  '도대체 준비하고 온 놈들이 한놈도 없네...'
그러며 일행들에게 일침을 놓는다.
'우린 10일 이후의 기차시간 까지 세밀히 실전 준비를 했다.  철저히 준비 안하면 시간 낭비가 크다.' 고.
어쭈구리~~~   준비 지가 했나...^^

사실, 초이와 내가 트러블 없이 다닐 수 있는 것도 전체 일정이 세부적으로 잡혀있기 때문이다.
출발하기 전에 이미 모든 숙박지를 인터넷으로 예약하여 카드로 비용까지 지불을 한 상태고, 
거기에 맞춰 그곳에 가는 기차시간까지 정해 놓았으니, 죽으나 사나 예정된 시각에 정해진 기차를 타고
숙박료를 지불한 유스호스텔로 가야만 한다.  그러니 의견이 안 맞을 수가 없다.

이런 전체 계획이 없으니, 막상 가서, 여기 보자...  저기 보자...  하루 더 있자... 등등,
의견이 엇갈리며 시간의 손실이 생기게 된다.

우린 계획이 다 세워져 있고, 게다가 당일 일정의 큰 흐름은 초이가 절대적으로 내게 일임하고 있다.
저녁이면 초이가 내게 묻는다. '형.. 내일은 어디가?'
가야할 큰 목적지는 내가 잡고 그날 돌아볼 세부 투어코스는 초이가 잡는다.
오늘도 원래는 카프리에서 쏘렌토로 거쳐 오려 했으나, 카프리를 자세히 보자는데 간단히 의견일치가 되었다.

물론, 전체 계획이 너무 타이트하게 짜여져 있을 경우, 관심있는 곳을 더 자세히 보지 못한다거나 
생각지 않았던 좋은 곳을 만났을 때 그곳을 그냥 지나쳐야 하는 단점도 있으니, 그건 각자가 감안하면 된다.

타이트한 계획과 세밀한 계획은 개념이 분명히 다른 것이다.